“한국어 실력과 토픽 점수는 다른 영역” [헬로 한글]
국립국제교육원에서 제공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쓰기 부문 예시 문항 [국립국제교육원 제공]

한국 콘텐츠의 인기 덕에 세계적으로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면서 정부가 주관하는 공인 시험인 한국어능력시험 (TOPIK) 응시자 수도 나날이 늘고 있다. 하지만 현 시험 체계가 실제 한국어 소통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4일 국립국제교육원에 따르면, 지난해 토픽 시험은 81개 지역에서 총 35만6661명이 응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토픽은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 및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지난 1997년부터 시행된 한국어 시험이다. 초급인 1~2 등급과 중·상등급인 3~6급으로 나눠 응시자의 한국어 실력을 평가한다.

시험은 쓰기, 읽기, 듣기 세 영역으로 구성돼 있으며, 고급 단계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관한 텍스트를 이해하고 답할 수 있을 정도의 배경 지식과 언어 능력을 필요로 한다. 말하기 시험은 지난해 처음 도입돼 필요한 사람에 한해 따로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토픽에 응시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정작 토픽 점수와 한국어 실력은 별개라는 인식이 많다. 암기식 문제가 많은 데다 문제가 실생활과 관련이 없고 유형 역시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능력시험 5급 소유자인 싱가포르인 에리카(28)씨는 “많은 응시자들이 고득점을 위해 기출 문제를 암기하고 어학당에서도 시험 문제를 어떻게 빨리 푸는지 알려준다”며 “한국어를 잘하는 것과 토픽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어 소통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존댓말과 격식체 사용도 지필 평가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대학에서 유학 중인 말레이시아인 자넷(27)씨도 “한국어 실력이 필요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토픽 등급이 활용된다”며 “토픽 시험 경향은 코리안 드림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중 통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홍콩 출신 클라라(29)씨는 시험 형태를 좀 더 세분화,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똑같은 시험을 본 사람들이 1급부터 6급까지 등급을 받게 되는데, 이와 같이 언어 실력을 구분하는 건 부정확할 수 있다”며 “각 등급에 맞는 수준의 시험 문제가 출제되는 게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는 있다. 시험 출제위원들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 시험 경향에 변화를 주고 있지만, 그때 그때 현실을 반영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윤석진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응시자들의 지적들은) 시험 주관하는 측에서도 충분히 인지하는 문제들”이라며 “그간 토픽 시험도 변화를 해왔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시험이 한국어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등급 자격증을 실제 어떻게 활용하는 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며 “한국어 능력 시험의 등급에 대한 활용 가이드라인을 대학교와 기업들에게 제시해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코리아헤럴드=박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