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폐쇄 제동 걸리자, 매월 평균 20여곳 없어지던 영업점 단 1곳만 폐쇄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시민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최근 금융당국이 점포 폐쇄 문턱을 높이며, 주요 은행들의 영업점 축소 움직임이 급격히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치며 이미 수백 개에 달하는 영업점을 폐쇄한 은행들이 뒤늦게 ‘보여주기식’ 속도조절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관련 조치에도 불구하고 점포 축소 움직임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서비스의 디지털 전환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비대면 업무가 대세로 자리 잡고 영업점 내방 고객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들은 비싼 임대료와 같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점포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문제는 점포가 사라지는 속도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점포 축소를 서두르면서, 금융 소외 계층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점포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령층의 피해를 지적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비용효율화를 위한 점포 축소를 아예 막을 수 없다면, 대면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는 제3의 방안 또한 모색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은행 점포 축소 ‘5월’ 이후 뚝↓…'보여주기식' 속도조절 논란

점포 폐쇄 제동 걸리자, 매월 평균 20여곳 없어지던 영업점 단 1곳만 폐쇄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올 3분기에 총 5곳의 영업점(출장소 포함) 폐쇄를 계획하고 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2곳과 1곳의 출장소를 통폐합할 계획이며, 농협은행은 3분기 중 2개 영업점의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은행들은 영업점 폐쇄 3개월 전에 관련 사실을 공지하는데, 7월부터 9월까지 예정된 통폐합은 이 5건이 전부다.

이는 직전 흐름과는 전혀 다르다. 앞서 지난해부터 올 2분기까지 5대 은행은 분기 평균 약 42곳의 영업점을 정리한 바 있다. 1년 전인 지난해 3분기만 해도 약 10배에 달하는 49개의 영업점이 사라졌다. 최근 들어 폐쇄 점포 수가 기존의 약 10%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이같은 변화에는 지난 5월부터 시행된 금융당국의 ‘은행 점포폐쇄 내실화 방안’ 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올 초 은행권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지자, 당국은 제도 개선을 통해 점포 폐쇄를 결정하기 전 실시하는 사전영향평가 항목을 강화했다.

특히 대체수단 기준을 높였다. 기존 은행들은 무인자동화기기(ATM)를 대체수단으로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ATM은 창구업무를 대체하기 부족하다”며 소규모점포나 공동점포 등을 대체수단으로 우선 마련토록 조치했다. 그 외에는 창구제휴, 이동점포 또는 고기능무인자동화기기(STM)을 활용하게끔 했다.

실제 해당 방안이 적용되기 시작한 5월 이후, 은행들은 점포 폐쇄를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4월에만 31개 영업점의 문을 닫은 5대 은행의 영업점 통폐합 수는 ▷5월 1개 ▷6월 1개 ▷7월 4개(예정) ▷8월 1개(예정) 등으로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전에도 비판 여론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만, 당국의 직접적인 조치가 되며 영업점 폐쇄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4년간 사라진 은행점포 1000여 곳…‘늑장 대응’ 비판

점포 폐쇄 제동 걸리자, 매월 평균 20여곳 없어지던 영업점 단 1곳만 폐쇄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이 창구를 찾은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연합]

뒤늦은 점포 폐쇄 속도 조절에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관련 업계에서는 주요 시중은행들이 코로나19를 거치며 속도조절을 감수할 수 있는 만큼의 점포 감축을 앞서 감행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실제 지난해말 기준 5대 은행의 국내 영업점 수는 3989개로 2018년말(4699개)과 비교했을 때 약 710곳이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전체 은행권에서는 1036곳의 점포가 자취를 감췄다.

추가로 ‘은행 점포폐쇄 내실화 방안’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개선하고 나선 점포폐쇄 공동절차 또한 은행권 자율규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 은행들은 규제 이후에도 그렇다 할 대체점포 대신, 인근에 위치한 지점과 통합하는 기존 방식을 택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5월 이후 폐쇄가 예정된 영업점 2곳을 인근에 위치한 지점과 통합할 계획이다. 내실화 방안 이후 첫 통폐합으로 알려진 국민은행‘ KB 인사이트점’ 또한 인근 지점과 통합됐다. 1㎞ 이내 자사 영업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점포 폐쇄 제동 걸리자, 매월 평균 20여곳 없어지던 영업점 단 1곳만 폐쇄
국민은행 직원이 모바일 화상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KB국민은행 제공]

이에 일각에서는 점포 폐쇄 급제동이 ‘반짝효과’에 그치고, 장기적 감축은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비대면 전환으로 인한 대면 고객 감소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비대면 금융상품 가입 비중은 점차 상승하고 있다. 하나은행에서 지난 1분기 비대면으로 이뤄진 신용대출 비중(건수 기준)은 92%로 코로나19 이후 1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점포 수가 줄면서 각종 비용이 효율화되고, 생산성 또한 높아졌다. 올 1분기말 기준 5대 은행의 평균 영업점별 생산성(충당금적립전이익/영업점 수)은 18억4800만원으로 전년 동기(13억5500만원)과 비교해 약 36%(4억9300만원) 상승했다.

일본 은행, 단순 업무 배제하고 컨설팅 기능 강화로 점포 살려

이에 디지털 전환에 발맞추면서도 대면 창구를 활용할 수 있는 제3의 점포 축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금융연구원 ‘디지털화에 따른 일본 은행들의 점포 전략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은행들 또한 점포 축소 ‘딜레마’에 봉착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점포의 이용 방안을 재정의하여 대면 점포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점포 폐쇄 제동 걸리자, 매월 평균 20여곳 없어지던 영업점 단 1곳만 폐쇄
서울 한 거리에 주요 시중은행들의 자동화입출금기기(ATM)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연합]

일례로 메가뱅크(일본 3대 은행)의 경우 단순한 업무를 온라인으로 유도하고, 여유 인력에 대해 점포의 컨설팅 기능을 강화하는 데 투입하고 있다. 일부 은행서는 기존 점포의 사무공간을 축소하고 자산투자 등 상담공간을 확대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무작정 점포를 줄이는 것이 아닌, 또 다른 대면 수익 창출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 국내서도 관련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하나은행은 7월 통폐합 예정인 전북 익산중앙출장소 공간을 ‘톡톡 라운지’로 활용할 예정이다. 톡톡 라운지는 화상 금융 업무가 가능한 STM(종합금융기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주 1회 인근 영업점 직원 방문을 통해 대면 서비스도 제공한다. 주민 편의성 축소를 줄이며, 점포 유지 비용도 감축하는 절충점을 택한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상 금융당국과 여론의 압박에 따라 속도조절에 나선 것일 뿐, 은행들의 점포 축소 수요는 달라지지 않았다”며 “점포 운영 비용을 줄이며 주민 편의성도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 은행권이 당면한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