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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이색적인 장소와 물건의 디자인을 랜 선을 따라 한 바퀴 휙 둘러봅니다. 스폿잇(Spot it)은 같은 그림을 빨리 찾으면 이기는 카드 놀이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전 세계인들의 날개가 되어 대륙을 오가는 보잉, 에어버스의 여객기들은 퇴위 후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비행기재활용협회(AFRA·Aircraft Fleet Recyling Association)에 따르면, 은퇴한 항공기 부품의 80~85% 가량이 재활용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기체를 그대로 살려 레스토랑, 박물관, 카페, 파티 장소로 개조됐다. 또 해체된 부품은 가구나 생활용품 등으로 쓰인다.
미국 보잉사의 베스트셀러 제트 여객기 보잉737의 한 대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최남단 양양 해변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미국 CNN,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지난 2월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사업가 펠리스 데민(Felix Demin)은 2021년에 은퇴한 점보 여객기 ‘보잉737’을 사들여 고급 숙소로 개조했다. 여기에 해발 150m 위에 매달려 있는 정원이란 의미를 담아 ‘프라이빗 제트 빌라 행잉가든(Private Jet Villa by Hanging Gardens)’ 이란 이름을 붙었다. 지난 4월 개장했다.
CNN은 “현존하는 항공기 개조 중 가장 아름다운 개조 중 하나 일 것”이라고 극찬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서 공개된 빌라의 모습은 누리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상을 보면 다른 승객의 눈치를 보거나 경찰에 붙잡혀 갈 걱정 없이 항공기 비상문을 슬쩍 열고 나가 날개 위를 거닐면 푸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고 상쾌한 바람에 온 몸을 맡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내부는 여느 고급 호텔과 다름없다. 바가 딸린 거실, 소파침대, 대형 옷장이 있는 침실 2개가 딸렸다. 전면 창이 있는 조종실은 '바다뷰'가 가능한 욕실로 바뀌었다. 항공기 날개 위에는 일광욕을 즐길 수 있게 나무 데크가 깔렸고, 날개 위에는 안전을 위해 유리 난간이 설치됐다. 기체 밖에는 개인 수영장, 석양을 볼 수 있는 야외 라운지, 화덕 등이 마련돼 하룻밤을 근사하게 보낼 수 있도록 꾸며졌다.
데민은 처음에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여객기를 구입하려다 마음을 바꿨다. 이미 인도네시아에서 호텔 체인을 운영 중이던 데민은 은퇴한 항공기가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후 수소문해 항공기 20여기를 살펴봤다. 결국 인도네시아 저가 항공사 만달라 항공 소속이었다 2021년 은퇴해 다른 투자자 손으로 넘어간 지금의 보잉737기를 만났다.
저택 만한 항공기를 해안가 절벽 위에 올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발리시의 어지러운 공중 전선을 피하기 어려워 결국 분해해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데민은 “볼트 5만개를 풀었다”고 했다. 기체를 분해해 옮기는 데 닷새가 걸렸다. 이렇게 옮긴 뒤에는 마을 주민들과 협력해 재조립했다.
어렵사리 프라이빗 풀빌라로 탄생한 이곳의 숙박료는 만만치 않다. 1박에 최저 7000달러(910만원)라고 한다.
좌석 벨트까지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근사한 인테리어 소품된 항공기 부품들
항공기를 식당, 호텔, 전시장, 카페, 파티장 같은 특별한 용도로 개조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사실 여객기 테마 호텔의 원조는 스웨덴 스톡홀름주 알란다 공항 인근에 있는 ‘점보스테이(jumbostay.se)’다. 시그투나시 지자체는 2007년 알란다 공항 인근 주차장 부지에 1976년 산 보잉747-212B를 옮겼다.
이어 기체에서 450개 좌석을 들어낸 뒤 단열 처리와 냉난방 시스템을 넣고 호텔 객실 33개를 만들었다. 조종실을 리모델링 한 스위트룸에는 계기판도 그대로 살려뒀다. 비행기 테마 호텔인 점보스테이는 공항 활주로가 내려다보이는 이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영국 사우스요크에 본사를 둔 스카이포드(Skypod)는 항공기 동체를 가든 바나 가든 오피스, 여름 별장 등 고급 개인 맞춤 공간으로 업사이클링 할 목적으로 2019년 창업한 회사다.
‘스카이포드’는 항공기 동체를 지붕 삼아 문을 달고, 바닥에 마루를 깔아 만드는 별채 같은 공간이다. LED 조명, 스마트팬, USB 소켓, 와이파이까지 제공한다.
회사 사이트를 보면 측창이 4개짜리인 길이 2.3m, 너비 3.9m, 높이 2.4m의 ‘스카이포드’ 제작비는 2만4995파운드(4152만원)이며 부가세는 별도다. 측창이 6개짜리에 길이 3.3m 짜리는 2만8995파운드(4817만원)에 부가세 별도다.
항공기 부품이나 내장재를 가구, 가방, 생활용품 등으로 재활용(업사이클링)해 판매하는 쇼핑몰도 있다.
요즘은 부품을 ‘재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새롭고 대안적인 아이디어로 탈바꿈하는 ‘새활용’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다.
유럽 항공기제작사 에어버스와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가 항공기 부품 새활용을 선도했다. 에어버스는 2018년에 ‘하늘 조각’(A Piece of Sky)이란 이름의 프로젝트를 띄웠다. 산업 디자이너, 예술가, 디자인 컨설턴트가 모여 A320으로 만든 팔걸이 의자, 램프, 커피테이블, 수납장 등 ‘하늘 조각’ 컬렉션을 선보였다. 에어버스 브랜드로 서핑보드도 내놨다.
2020년에 루프트한자는 퇴역 항공기를 가구, 조각품, 장식용품 등으로 제작하는 ‘업사이클링 컬렉션 2.0’을 출범시켰다.
이밖에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본사를 둔 스카이아트(SkyART, skyart.com), 독일 회사 플루그짜이그모벨(flzgmbl.de),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모토아트(motoart.com) 등이 항공기 부품을 새활용 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해당 사이트들을 둘러보면 보잉의 KC-97기 프론트 랜딩기어 도어는 중세시대 기사의 갑옷 느낌이 나는 메탈 세면대로 변신했다. 고객의 욕실 사양에 맞춰 맞춤 생산해 준다고 모토아트는 소개했다. 1961년 퇴역한 알바트로스 전투기의 플로트탱크는 새 것처럼 광택을 낸 다음 안쪽 부분에 패브릭이나 가죽 소파를 넣어 근사한 2인용 소파로 탄생했다.
기내 좌석의 안전 벨트 고리는 자동차 키 등을 걸어두는 소품 걸이로 새활용됐다. 플루그짜이그모벨이 89유로(12만 6000원)에 판매 중이다. 이 사이트에선 또한 여객기 측면 둥근 창틀을 시계 틀로 삼은 탁상용 시계를 199유로(28만2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플레인태그(planetags.com)는 항공기 동체를 잘라낸 뒤 더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 타원형의 기념물(태그)만을 제작, 19~119달러대(2만5000~15만6000원)에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