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공해지수 전국 최저, 고원 청정지
우주에서 고생대, 상고사, 중세 부터
약속의땅 인문학, 폐광후 매력 까지
은하수여행, 구문소 지질화석 여행
고려충절 깃든 두문동선 야생화 꽃길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태백은 큰 백산(밝은산 혹은 흰산)이다. 하늘과 태양을 섬기며 백의(白衣)를 사랑했던 한민족의 시원(始原), 진짜 태백산은 8세기 남북국시대(신라-발해) 이후, 우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만다.
그래서 강원도 태백은 남북국시대 남국인 신라가 강원도 남동부 백두대간 분기점에 솟은 가장 높은 산을 태백산이라 칭하며 제사를 지내면서 비롯된 이름이다.
진짜 태백은 지금의 러시아 바이칼호 인근, 혹은 지금의 중국 서부에 있는 태백(중국명:타이바이), 만주에 있는 태백산 등으로 비정된다. 진짜 태백이 우리와 멀어지고 유사 태백의 등장 과정에서 한자는 ‘太伯’에서 ‘太白’으로 바뀐다. 북한 백두산,묘향산,구월산도 거론되는데, 다양한 고서를 종합해보면, 강원도 태백산을 둔 취지와 비슷한 일종의 ‘대리점’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백두와 태백은 환인의 아들 환웅왕검과 단군조선연방제국 같은 우리의 원조들에게 예를 갖추는 일을 수천년 쉬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우주에서 ‘태양의 후예’까지= 어느덧 진짜 태백 같아진 태백시는 지구의 역사와 함께 인간이 바라보던 우주와 은하수, 고생대 자연유산에서 부터, 수천년 우리 한민족의 활동과 시대 변화가 남긴 족적, 대한민국을 건설한 석탄에너지의 원천이자 희망을 일군 ‘약속의땅’ 문화유산, 그리고 폐광 이후 발랄해진 문화관광 자원에 이르기 까지, ‘수십억년을 아우르는 콘텐츠’를 보유한 여행지가 되었다.
늘 숨쉬며 살던 이 모든 것이 매력인 줄 모르고 살다가, 이제 태백 사람들은 은하수관측여행, 고생대지질여행, 고려말 두문동 충절트레킹, 태백산 야생화 생태트레일, 한강-낙동강-오십천 발원지 투어, 페광지 역사 인문학, 고원 목장과 ‘태양의 후예’ 촬영지 같은 태백 매력여행을 국민들에게 적극 알리기 시작했다.
광산촌이 전성기를 이룰 때에도 청정대기를 자랑하던 태백은 수백개의 갱도가 문을 닫아 이제 1개만을 남겼고, 초미세먼지도 범접하지 못하는 지역이라 삼척, 청송, 칠곡, 기장, 서귀포 등과 함께 국내 최고 청정지역으로 꼽힌다. 밤별이 빛나 그야말로 추억의 별밤을 여전히 과시하는 곳이다.
▶별밤, 은하수, 노랑오로라= 그래서 태백시는 은하수 별밤 스팟 7개소를 선정해 ‘별 비 내리는 태백의 밤으로, 은하수행 심야버스 900번’을 운행한다.
함백산 은하수길(1312m), 오투리조트(996m), 스포츠파크(812m), 오로라파크(686m), 탄탄파크(742m), 구문소(540m), 태백산 당골광장(865m)이다.
평균 해발고도 902.2m인 태백은 낮은 빛공해지수, 열대야 없는 기후 등 육안으로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망원경 등 기구를 이용하면 별과 은하수를 더 선명히 관측한다. 특히 여름은 은하수를 보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하늘이 맑은 날 7개 스팟의 관측 언덕에 오르면, 머리 위에 쏟아지는 별들이 멀리 보이는 도심의 야경을 만나 노랑색 오로라 현상을 빚기도 한다.
태백 은하수 투어를 알리기 위해 성수동 LCDC 1층에 개설한 팝업스토어는 열흘간 서울시민들과의 우정어린 별밤이야기를 마치고 27일 오후8시에 문을 닫는다.
▶고생대 여행= 태백산 위성 산들인 연화,삼방,박월,면산이 5억년 전 형성된 이후,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 쪽의 물이 지금으로부터 2억~3억년 전 부산 을숙도-다대포를 향해 남행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동점동(옛 장성읍 동점리)에서 철암천과 충돌한다. 물은 돌고돌다 소(沼)를 형성하고 결국 산을 허물더니, 급기야 구멍 까지 낸다.
구멍,굴을 뜻하는 구무를 붙여 구무소로 불리다 구문소(求門沼:국가 명승, 천연기념물)가 된다. 순우리말로는 뚜루내. 지질 전문용어로는 놀랍게도 도강산맥(渡江山脈), 강물이 산을 넘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례가 더는 없다.
높이 20~30m, 넓이 30㎡정도 되는 커다란 기암절벽과 주위의 낙락장송, 누워버린 지층암괴 등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마당소, 자개문, 용소, 삼형제폭포, 여울목, 통소, 닭벼슬 바위, 용천 등 구문팔경을 하나하나 찾아보자.
이 기막힌 지질현상에 숱한 전설이 만들어진다. 황지천 백룡과 철암천 청룡이 싸운 얘기가 대표적인다. 물길은 황지천이 약해지고 철암천은 그대로인데, 스토리상 승자가 백룡인 것을 보면 이야기 제조 당시 황지가 철암보다 셌던 모양이다. 구문소 동굴 속에 삼척 쪽으로 용궁이 연결됐다는 얘기, 신라 선덕여왕의 아들 효도왕자-월선 로맨스, 동이족인 하의 우왕이 연방 황제인 단군왕검에게 치수를 배울 때 칼로 뚫어서 생긴 곳이라는 전설도 있다.
이곳에 있는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에선 태백형 삼엽충 8개마디 절지동물 화석 등 고생대 식생, 중생대 공룡, 신생대의 주요 동식물 등을 영상 및 디오라마로 연출해 공부하는 즐거움을 가족여행객에게 선사한다.
▶중세 두문동 족적과 천상의 화원= 부리야(부여)족 어머니한테서 태어나고, ‘진(발해)의 칸(왕)’을 자처했던 징기스칸의 몽골(원나라)이 고려를 제압했어도 형제국의 후예임을 인정해 만주경영권 까지 내어줬지만, 내정이 혼란스러웠던 고려는 내부 친명나라 세력의 쿠데타로 망하고 만다. 이에 고려수호 세력들은 공양왕 재추대를 통한 부활을 노리며 개경 인근 두문동에 은거한다.
두문동 은거파 중 일부는 공양왕이 삼척-울진 일대에 있다는 말을 듣고 태백산으로 잠입하는데, 이를 계기로 태백에도 두문동이 생긴다. 결국 공양왕은 삼척 궁촌에서 이성계 일파에 의해 살해돼 바닷가 언덕에 묻혔고, 시신 중 일부를 수습한 고려 참모들이 고양시에 이를 묻었다. 그래서 공양왕릉은 2개이다. 궁촌의 궁(宮)은 공양왕이 은거한 터를 뜻한다. 개경의 두문동 농성파와 그 후손들은 일제히 조선의 관직을 거부한 채 호남과 영남의 학문탐구-후진양성 은둔거사, 선비 의병, 반상이 함께하는 대동공동체 리더로 살아간다.
태백산 두문동-금대봉-분주령-대덕산-한강발원지 검룡소로 이어지는 트레일 코스는 두문동 거사들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날까지도 희귀식물과 꽃들이 미소짓고, 건강한 절경을 여행자에게 선사한다.
두문동재를 지나면 만나는 금대화해(金臺花海:태백12경 중 하나)는 봄~가을 다양한 야생화가 피어나 천상의 화원이라 불린다.
서울탐방단이 올랐을 때엔 함박꽃이 풍성하게 핀 가운데, 졸방제비꽃, 산개불주머니, 얼레지, 동자꽃, 일월비비추, 태백기린초, 쥐오줌풀, 복주머니란, 감자난초, 곰보철쭉, 가짜꽃이 벌과 나비를 유혹하고 진짜꽃은 아래에 피는 백당나무가 피었고, 흰색 영롱한 희귀종 나도수성초가 고고한 자태를 뽐냈다. 7월 중순이면 예쁘고 매서운 각시투구꽃도 가세한다.
대덕산 정상에 오르면 범꼬리꽃이 피어난 가운데, 발 아래 놓인 주변 풍경을 내려다보며 자신감을 충전한다.
▶이제 현대로= 소도천이 흐르는 함태탄광 폐쇄지에 문을 연 지지리골 자작나무숲은 정선 하이원 하늘길과 이어지는 운탄고도 1330길의 한 구간이다. 길을 따라 골짜기를 내려오면 옛 탄광촌의 모습이 담긴 상장동 벽화마을에 도착한다. 지지리 못나서가 아니라, 옛날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잡아 해먹던 돌판 돼지구이 이름 ‘지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46억년전 지구가 만들어져 은하수를 보기 시작했던 때, 5억년전 고생대, 수천년 단군연방제국 상고사, 중세시대를 넘나들며 태백여행을 하고 나면, 관광객의 발걸음은 20세기 태백 탄광시대의 족적 ‘철암탄광역사촌’, 광부의 보양식 ‘물닭갈비’집, 폐광 이후 재치와 끼가 넘치는 21세기 핫플레이스 ‘태양의후예’ 촬영지, 몽토랑 산양목장으로 이어진다.
태백 처럼, 우주에서 고생대까지, 역사-청정생태-엔터테인먼트-미식 모두를 아우르는 여행지가 국내에 더 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