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세계 최고 부자이자 전기차의 혁명가로 알려져 있지만 우주여행을 꿈꾸며 우주선을 개발하는 스페이스X의 창업자기도 합니다. 머스크에게 최근 도전장을 던진 한국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10년 안에 스페이스X와 비슷한 가격으로 상용 로켓을 발사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입니다. 사명만 봐도 항공(aero)과 우주(space)를 향한 포부를 알 수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우주 사업만 하는 기업은 아닙니다. 방위산업이라는 거대한 사업군을 다루고 있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야말로 쪼개지고 합쳐지고 팔고 팔리기를 많이 한 회사입니다.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한화 방산 부문을 흡수했고 지난해에는 한화디펜스를 합쳐 통합법인이 됐죠.
거슬러 올라가자면 1977년 삼성정밀공업에서 역사는 시작됩니다. 삼성항공산업을 거쳐 삼성테크윈으로 성장했고 2015년 한화그룹으로 둥지를 옮겼죠. 이듬해 인수한 두산DST까지 더해 새롭게 출발한 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입니다. 그사이 인수·합병(M&A)과 분사, 사업권 양수·양도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반을 다지고 다진 끝에 땅과 바다, 하늘과 우주공간을 아우르는 방산산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통합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달 3일 공식 출범했습니다.
우리는 국가대표 기업으로서 대한민국은 물론 자유세계를 수호하는 책임과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와 안보를 위한 대체 불가능한 한화그룹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그룹 내 방산 3사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모았다는 건 하늘과 우주가 앞으로의 사업 지향점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3대 사업 방향으로 방산사업 확대와 우주사업 확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진출을 제시한 것도 그 연장선이죠.
지금까지 해오던 방산사업을 탄탄하게 이어가되 하늘과 우주 공간에서 펼쳐나갈 수 있는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얘깁니다. 말하자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래가 하늘과 우주에 있다는 거겠죠.
이런 미래가 가능하기 위해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금’이 탄탄하게 뒷받침돼야 합니다. 바로 전체 매출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방산산업이죠. K-방산의 수출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장갑차와 다연장로켓발사대 등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핵심 무기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창원2사업장에 지난 11일 직접 다녀왔습니다.
축구장 25개 크기인 6만2000평 부지에 생산동만 1만9000평, 축구장 9개 크기에 달하는 창원2사업장에선 작업자 250여명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선 육군의 주력 장갑차인 K21 보병전투장갑차와 국내 최초 개발 장갑차인 K200계열 기동체계, 주력 수출 상품인 천무발사대를 포함한 화력체계, 천마 등 대공체계까지 총 20여종의 무기가 생산된다고 해요.
이날 생산 라인을 따라서는 K200계열 장갑차인 120㎜ 자주박격포 7대가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중간중간엔 창정비(overhaul)를 위해 들어온 K200이나 K21 계열의 장갑차도 눈에 띄었죠.
장갑차가 뭐냐고요? 말 그대로 장갑(armored)+차(vehicle),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장갑을 두른 차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전차(tank)의 공격을 지원하는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개발했습니다. 쉽게 말해 전장의 택시라고나 할까요. 보병수송을 위한 장갑차를 기본형으로 각종 공격 능력을 더한 다양한 종류의 장갑차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K200은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장갑차입니다. “결함 200개를 찾아내 완벽한 무기체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아 K200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해요. 결함이 200개씩 나오면 안 되겠지만 그만큼 꼼꼼하게 살피겠다는 거겠죠. 지금은 성능개량형인 K200A1 보병수송장갑차를 중심으로 지휘용, 구난용, 각종 포를 탑재한 공격용 등으로 세부 제작되고 있습니다.
장갑차 제작 공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알루미늄 합금 판재를 전처리한 뒤 상부와 하부 본체를 각각 용접하고 상하부를 용접하면 일단 차체를 세우는 작업이 끝나는데요. 워낙 두꺼운 합금을 용접하다 보니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큰 쇳소리가 넓은 공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차체 용접의 상당 부분을 로봇이 하고 있다는 점은 눈에 띄었습니다. 현재 자동용접 비율이 70%를 넘는다고 해요. 로봇이 접근하기 어려운 브라켓(받침대) 등 일부만 작업자가 손으로 하고 있었죠.
차체를 세우고 나면 가공, 조립 순으로 이어져요. 먼저 차체 형상을 보다 정밀하게 만들죠. 도장을 하고 돌아오면 본격적인 조립이 시작됩니다. 빈 장갑차의 속을 채워 넣는 겁니다. 차체가 완성되면 방사선 장비로 크랙(틈새)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지금껏 문제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해요.
창원2사업장에선 차체와 포탑을 동시에 조립해 생산시간을 단축하고 있었습니다. 장갑차의 심장인 파워팩(변속기와 엔진의 결합체)을 포함한 핵심 부품이 제자리에 착착 찾아가는 모습이 변신로봇의 단계 단계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바퀴까지 장착되고 나니 당장 전장에 나가도 승산이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네모난 판재가 늠름한 무기로 거듭날 때까지는 보통 3~6개월 소요된다고 해요. 동시다발적으로 생산 공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단계별 소요되는 택트타임(각 작업 공정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3일이지만요. 조립만큼이나 긴 시간이 걸리는 게 성능 테스트인데 체계 전체는 물론 장비별로도 실내외 시험을 반복 시행하며 정밀한 생산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현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건너편 시작실에선 완성된 수출형 장갑차인 타이곤과 레드백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유럽 방산전시회에 다녀왔다는 레드백은 내부 점검·정비를 위해 일부가 해체돼 있는 상태였음에도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어요. K200보다 중량 기준 약 세 배 큰 레드백은 전투임무 수행에 특화돼 있어서인지 더 단단해 보였습니다.
호주에서 서식하는 붉은등 독거미 이름을 딴 레드백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스라엘과 호주, 캐나다 등 글로벌 방산기업과 협력해 개발한 5세대 보병전투장갑차입니다. K방산 수출 기사마다 언급되는 바로 그 장갑차죠.
레드백은 현재 호주군의 차세대 장갑차 사업을 두고 독일 라인메탈사의 링스와 경쟁 중인데 현재 최종우선협상대상자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엔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수출형 장갑차는 보통 맞춤형으로 제작됩니다. 타이곤도 사막에서의 이동에 최적화돼 있죠.
레드백의 경우 파병이 많은 호주군의 특성을 반영해 다양한 위협 조건에 견딜 수 있도록 방어성능을 높였습니다. 승무원 생존에 최우선 순위에 두고 대전차미사일 방어체계 등을 갖추는 것은 물론 열추적 미사일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스텔스 기능도 넣었다고 해요.
주행시험장에선 천무 발사대와 탄약운반차, 수상 구난장갑차인 K288A1의 시연과 함께 탑승 체험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안개로 뒤덮인다는 뜻을 담은 천무는 다연장로켓입니다. 언뜻 대형 트럭 같아 보이지만 뒤편에는 로켓 모듈 2기가 실려있어 유도탄 12발을 발사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장사정포에 대응하기 위해 1314억원을 투입해 독자 개발했죠.
시속 80㎞로 빠르게 작전지에 투입돼 도착 7분 만에 첫 탄을 쏠 수 있다고 해요. 최대 사거리 80㎞ 이내면 360도 범위 어디든 대량 타격이 가능합니다. 60% 경사도의 오르막을 전진으로도 후진으로도 거뜬히 올랐고 탄을 재장전하는 과정도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천무는 중동 수출 사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부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에선 말을 아끼고 있지만 지난해 말 UAE(아랍에미리트)를 찾은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천무 운용부대를 방문하면서 수출 사실이 드러났고요.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가 총참모장의 부대 방문 영상을 공개하며 천무가 배치된 모습이 노출된 바 있습니다.
2층 높이쯤 돼 보이는 천무에 올라타니 운전석 옆으로 모니터와 함께 디지털 사격 시스템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지휘관이 이곳에 앉아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탄을 쏜다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분이 설명했죠. 사실 천무를 타고 가장 놀란 건 편안한 승차감과 쾌적한 환경이었습니다. 상당한 경사도의 지형을 빠르게 달렸지만 불편함이 전혀 없었어요. 에어컨도 빵빵했죠.
이어 올라탄 K288A1은 체감상 더 빨랐습니다. 주행시험장을 크게 한 바퀴 도는데 쓰고 있던 안전모가 벗겨질 정도였습니다. 물 위에서의 움직임도 예상외로 재빨랐습니다. 더 이상 수송의 역할만을 하지 않는 장갑차라고 하더라도 기동성에 초점을 맞춘 방산품 다웠습니다.
사업장 한켠에선 오는 5월 완공을 목표로 통합물류센터와 통합분해장 건설이 한창이었어요. 늘어나는 수출 물량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창정비 업무를 효율화하기 위해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갑차를 기준으로 통상 10~11년이면 정비가 필요한데 최근 우리 군의 창정비 필요 물량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내년, 내후년 수출 확대에 대비해 생산라인도 재정비할 예정이라고 해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방산 부문의 수익 비중은 50.0%에 달합니다. 영업이익 비중은 65.6%로 그보다도 높죠. 그만큼 방산사업이 회사의 기둥이라는 얘깁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비전은 분명 항공·우주를 향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선 그만큼 회사의 캐시카우인 방산 부문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할 겁니다. 방산 부문이 적극적인 수출 확대를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