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인터뷰

공동성명 무산…“마지막까지 ‘日사과’ 샅바 싸움 했을 것”

“강제징용 반대측, 피해자 권리 실현 위한 대안 제시 없어”

“제3자 변제, 청구권 협정과 민법 권리 사이 현실적 방안”

“지소미아, 韓을 위한 것…국민 교류로 지방 경제 활성화”

한일관계 전문가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인터뷰

“선거 앞둔 기시다, 정치적 부담…답방때 구체적 언급 필수” [尹의 대일외교 책사, 한일회담 평가①]
박철희 서울대학교 교수가 1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한일 관계가 이렇게 호전되는 것의 99%는 한국의 덕입니다. 한국이 생각을 바꾸고 이니셔티브를 쥐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최근에 겪어보지 못했던 한국의 리더십 스타일입니다. 일본 당국자도 윤 대통령의 결단에 ‘대단하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2018년 10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확정판결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일 관계가 5년 만에 중대 분기점을 맞이했다. 지난 6일 한국 정부는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 및 유족 15명에게 우리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한 기금으로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해법안일 발표된 지 열흘 만에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12년만에 일본을 양자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며 ‘셔틀외교’의 재개를 알렸다.

한일 정상회담은 끝났지만 곳곳에서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야권에서는 ‘굴욕외교’라고 맹공을 하고 있다. 정부의 해법안이 발표된 후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3개월 만에 60%대로 올랐다.(17일 한국갤럽 발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한일 양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린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다음날인 17일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안들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앞으로 협력할 수 있는 협의체들을 제도화하고, 미래 세대가 활동할 수 있는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만들어서 응원해주는 세 가지의 매듭을 지은 것”이라며 “만족을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성공적이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한일관계 전문가인 박 교수는 윤 대통령의 외교정책 책사 중 한명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의 대선캠프부터 합류해 외교정책 기틀을 다졌고, 당선인 인수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전문위원을 맡아 당선인의 정책협의대표단으로 미국과 일본에 다녀왔다.

“日 구체적 사과 없어 아쉬움…선거 앞둔 기시다, 정치적 부담”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됐던 일본 피고기업의 배상 기여와 직접 사죄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 정부가 지난 6일 강제징용 해법안을 발표했을 당시 밝힌 입장을 상기하는 데 그쳤다.

박 교수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실에서 진행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기시다 총리가 역대 정부의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일반론적으로 말하기보다 직접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저도 아쉽다”고 밝혔다.

양 정상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을 도출하지 못했다. 박 교수는 “서로 치열하게 끝까지 샅바 싸움을 하다가 이 문구(일본의 사죄)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공동성명을 못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봤다.

기시다 총리의 구체적인 사과가 이뤄지지 않은 배경으로 정치적 이유를 꼽았다. 일본은 내달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통일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특히 4월23일에 함께 열리는 중의원(하원) 보궐선거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지역구였던 야마구치 4구와 기시 노부오(岸信夫) 전 방위상의 지역구인 아먀구치 2구가 포함돼 기시다 내각의 중간평가가 될 전망이다. 박 교수는 “기시다 총리에게 이 보궐선거는 굉장히 중요한 선거이기 때문에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러 그 부분을 피해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기시다 총리가 셔틀 외교의 재개로 올해 방한할 때 더욱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 왔는데 한국의 식민지배에 대한 표현을 두루뭉술하게 한다면 진정성에 의문이 생길 것”이라며 “우리가 바라는 선물은 큰돈이 아니다. 식민지배에 대해 자기 마음을 표현해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런 부담은 일본이 지는 게 당연하고, 일본도 한국까지 온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의사를 표현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노력에 비해 일본 측의 호응 조치가 부족하다는 한국 내 여론이 많다’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앞으로도 양국에서 자주 공조하고, 하나하나 구체적인 결과를 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이 답변에 주목하며 “한꺼번에 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응하겠다는 이야기는 구체적인 것을 조금씩 꺼내들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선거 앞둔 기시다, 정치적 부담…답방때 구체적 언급 필수” [尹의 대일외교 책사, 한일회담 평가①]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

“제3자 변제안은 피해자 권리 실현하는 현실적 방안”

양국 모두 이제부터 또 다른 지점에서의 시작이다. 일본 측은 우익 세력의 반발을 딛고 ‘호응 조치’를 고심해 내놓아야 하고, 한국 측은 피해자들의 반발을 설득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박 교수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납득을 해서 이분들을 잘 보살피는지가 지금부터의 큰 과제”라며 “당사자인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강제징용 해법안에 반대하는 측이 피해자들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고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이지만, 이들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주장을 하며 거부하고 있다. 이에 피고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현금화 절차가 진행됐지만, 현금화가 된다고 해도 배상금을 모두 충당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정부는 배상금 지급이 지연되면서 고령이 된 피해자들을 위해 신속하게 해법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해왔다. 현실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생존자 분들도 그렇지만 유족들도 80대가 넘는 고령”이라며 “그분들의 권리를 어떤 식으로 실현해줄 것인가에 대해 대안 제시가 없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2018년에 그동안 정부의 입장과,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해석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가 됐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행정부 수장인 윤 대통령이 사법부 판결을 무력화하는 삼권분립 훼손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 교수는 “한일 국교 정상화의 기반인 1965년 청구권 협정을 기본적으로 흔들지는 않겠지만, 대법원 판결로 인해 민법적인 권리가 생겼기 때문에 상충되지 않도록 정부가 우선 변제하는 제3자 변제안으로 해결하면서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기업의 참여도 완전히 닫혀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일단 권리를 가지고 있는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도 좋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정상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경제안보 대화를 출범하고 각 분야에서 협의체를 재개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협력의 구체적인 모습을 묻는 질문에 박 교수는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 공조와 미중 패권전쟁에서의 경제 협력, 국민 교류에 따른 지방 경제 활성화를 꼽았다.

박 교수는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는 일본을 위해서도, 미국을 위해서도 아닌 우리가 탄도미사일과 핵에 대한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생존에 관련한 문제인데 0.1%를 몰랐다가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 산업에 있어서도 일본이 생산, 기술, 공급에서 자연스러운 협력 파트너라고 꼽았다. 또한 박 교수는 “일본 국민이 가장 오고 싶은 나라가 한국이고, 당분간 안 바뀔 것”이라며 “장벽을 없애 국민 교류를 당기는 것은 지방 경제를 살리는 데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