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재처리·핵기폭 기술 확보 어렵지 않아

NPT 탈퇴·한미동맹 재설정 등 정치적 난제

尹 “자체 핵 보유”…韓美 ‘핵 연습’으론 부족, 독자 핵무장은 옵션 [핵무장론 재점화]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도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자체 핵 보유를 언급해 주목된다. [연합]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자체 핵보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의 독자 핵무장론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경우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런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딸 김주애와 함께 핵탄두 탑재 추진 미사일시설을 찾는 등 미래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전제조건이 충족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소재로 한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떠올리게 하는 한국의 핵개발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현실화하려면 숱한 기술적·정치적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먼저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과 관련된 농축·재처리기술과 핵기폭기술 등을 확보해야 한다. 또 민·관·군 등에 흩어져 있는 기술을 한곳으로 모으고 종합하는 컨트롤타워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핵무기가 최첨단 기술이 아닌 데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기술적 측면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연구·개발 등 인적 자원에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분석이 뒤따른다. 박휘락 전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핵무기가 고도의 기술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며 “의학서적을 보고 이론은 습득할 수 있지만 곧바로 수술에 나설 수 없듯이 한동안 준비기간을 갖고 잠재력을 키울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술적 문제보다 어려운 것은 정치·외교적 문제다. 우선 한국이 핵개발에 나서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한다. 북한의 한국을 겨냥한 핵위협이 고도화되면서 미국 조야에서조차 ‘본 조약상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지상 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음을 결정하는 경우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NPT 제10조1항을 근거로 한국의 탈퇴가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NPT 체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제사회의 제재 등 적잖은 부담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비확산 기조를 확고히 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는 한국의 핵개발은 한미 원자력협정 논란 등 한미 동맹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남는다. 이와 관련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동아시아협력센터장은 “한국이 핵을 보유하면 북한은 멀리 있는 미국의 핵이 아니라 가까운 한국의 핵을 더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은 더욱 안전해질 것”이라면서 “북한 핵공격에 한국이 자체 핵으로 대응하면 되니 미국은 한국을 지키기 위해 핵을 사용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한미 동맹이 시험대에 오르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윤 대통령이 그동안 핵무장은 절대로 안 된다는 금기를 깬 것”이라며 “자체 핵보유가 플랜A는 아니더라도 플랜B나 C로 언급하는 것은 협상력을 키우는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또 “국가안보실 3차장직을 신설해 국가안보실이 북핵 문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NPT 탈퇴도 검토해야 한다. 검토만으로도 강력한 대북·대중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한국의 핵개발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벗어나고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게 된다는 비판도 있다. 다만, 북한이 이미 핵보유국임을 주장하고 있는 데다 수십년간 비핵화 노력이 사실상 물거품이 된 가운데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만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