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등학생 상징…100년 넘은 日 문화

내년 봄 신학기 앞두고 ‘란도셀’ 쇼핑 발걸음 분주

무거운 란도셀 때문에 ‘등교 거부’…팬데믹으로 더 심화

200만원 란도셀도 등장·란도셀 ‘양극화’ 심화

일본판 ‘등골 브레이커’ 국민책가방 란도셀의 ‘수난 시대’
일본에서 내년 신학기를 앞두고 벌써부터 자녀에게 '란도셀'을 사주기 위한 부모들의 '란활(ラン活)'이 분주하다. 몸집을 압도하는 크기의 각진 가죽가방은 일본 학생들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일본 초등학생의 상징을 꼽으라면 단연 ‘란도셀(ランドセル)’이다. 란도셀은 일본 학생들이 주로 메는 가방으로, 자신들의 몸집만 한 가죽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은 일본의 흔한 풍경 중 하나다.

NHK는 “란도셀을 멘 학생들의 이미지는 일본에서 매우 흔하다”면서 “모든 어린이가 란도셀을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어린이가 그것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년 봄 신학기를 앞두고 란도셀을 구입하려는 이른바 ‘란활(ラン活)’을 개시한 부모들의 발길이 벌써부터 분주해지고 있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그간 무조건적이었던 ‘가방=란도셀’이라는 공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분위기다. 아이들의 건강마저 위협하는 란도셀의 무게 그리고 고물가에 더 감당할 수 없게 된 란도셀의 ‘비싼’ 가격 때문이다. 게다가 ‘무겁고 비싼’ 란도셀의 대안으로 경량화된 가방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란도셀의 철옹성을 위협하고 있다.

가방 무거워서 등교 거부? ‘란도셀 증후군’ 논란

란도셀의 무게 때문에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신체 통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면서 가벼운 가방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몽벨이 란도셀의 대안을 찾는 수요를 겨냥해 출시한 책가방을 한 학생모델이 메고 있다. [몽벨 제공]

가장 문제는 터무니없이 무거운 란도셀의 무게다. 이미 일본에서는 란도셀 때문에 학생들이 신체통증을 호소하거나 통학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란도셀 증후군’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지난 11월 일본 스포츠용품회사인 풋마크가 1~3학년 소학생들과 학부모 1200쌍에게 설문한 결과, 학생의 93.2%가 ‘책가방이 무겁다’고 답했다. 부모의 89.5%도 ‘아이들이 책가방을 무겁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 학생들이 메는 란도셀의 평균 무게는 지난해 3.97㎏에서 올해 4.28㎏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책가방이 무겁다고 느끼는 학생 3명 중 1명은 ‘통학을 꺼린 경험이 있다’고 했고, 3.5명 중 1명은 ‘통학 시 어깨나 허리 등에 통증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책가방의 무게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시라토 켄 다이쇼대 교수는 교육과정 변화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란도셀이 더 무거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0년부터 실학습 지도요령에 따라 ICT교육이 추진되면서 아이들이 교과서에 태블릿까지 가지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게다가 팬데믹으로 물통과 실내화 등 개인용품을 지참하고 다녀야 하기에 아이들의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란도셀 증후군’으로 인해 학생들의 ‘통학 우울증’이 증가하자 아웃도어업계 등을 중심으로 가벼운 등교가방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국민가방’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란도셀로 단일화된 등교가방의 선택지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미 홋카이도 오타루에서는 70% 이상의 소학생들이 가벼운 가방을 사용하고 있고, 교토나 나가노의 일부 지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평균 구매비용 50만원 훌쩍…비싼 란도셀 꼭 사야 하나

일본판 ‘등골 브레이커’ 국민책가방 란도셀의 ‘수난 시대’
란도셀은 주로 수십만원을 훌쩍 넘는 고가인 경우가 많다. 저출산으로 부모들이 고비용도 마다치 않고 있는 데다 업계도 소량 생산, 고급화 전략을 취하며 가격을 끌어올린 것이 원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다가 란도셀은 웬만한 명품가방 못지않은 가격을 자랑한다. 지난봄 란도셀공업회가 신입생 자녀를 둔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부모들은 란도셀 구입을 위해 평균 5만5300엔(약 53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란도셀 구입비용은 해마다 증가세다. 지난 2006년 조사에서 학부모들이 란도셀 구입에 지출한 비용은 2만9900엔(약 28만6000원)이었다. 지난 15여년간 비용이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심지어 ‘프리미엄’ 제품들의 가격은 200만원 선에 형성돼 있다.

란도셀의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저출산이다. 나오코 쿠가 일본 NLI연구소 연구원은 “가족당 아이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각 아이에게 쓸 수 있는 돈의 양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게다가 한 아이는 2명의 부모님과 4명의 조부모님이라는 6개의 ‘자금원’을 갖게 되고, 이들은 란도셀에 더 많은 돈을 기꺼이 쓰고 있다”고 밝혔다.

저출산 트렌드에 맞춰 소량 맞춤 생산과 고급화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해온 란도셀 제조업계가 팬데믹 이후 예년만큼 제품을 생산해내지 못한 것도 가격 상승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터무니없이 비싼 란도셀의 가격은 소위 ‘란도셀 갭’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저소득 가구의 경우 란도셀을 구입할 수조차 없는 현실이 만들어낸 용어다. 심지어 오늘날 유례없는 물가상승으로 실질소득이 급감하면서 일반가정조차 란도셀 구입 여력이 줄어든 상황이다.

지자체 등은 부모의 부담 경감을 위해 다양한 묘안을 내놓고 있다. 한 지역에서는 중고 란도셀을 신청 가정에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아예 지역 신입생들에게 자체 제작한 란도셀을 주는 지자체도 있다.

동시에 지자체들은 ‘꼭 란도셀이 아니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강조하는 중이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최근 구마가이 도시히토 지바현 지사는 란도셀과 관련해 “학교에서 반드시 란도셀을 메야 한다는 규정이 없고, 학교용품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해 교육행정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도 ‘일본의 란도셀주의가 슬슬 재검토될 시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란도셀은 어떻게 ‘일본 초등학생의 상징’이 됐을까

일본 한 초등학교에 란도셀을 멘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로이터]

란도셀의 유래는 군대와 연관돼 있다. 일본은 1860년에 서양식 군대제도를 도입하면서 장병들의 휴대물을 넣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배낭을 들여왔다. 그리고 그것을 배낭의 네덜란드어인 ‘란셀(ransel)’을 일본식으로 란도셀이라 부른 것이 시초다.

란도셀을 학생들이 사용하게 된 것은 1885년, 귀족학교인 가쿠슈인 초등과에서 란도셀 사용을 의무화하면서다. 당시 가쿠슈인에서는 학생들이 마차를 타고 등교하거나 통학 시 하인들이 그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는 이를 금지함과 동시에 학생들이 학교에 교과서나 준비물을 지참하는 것을 쉽게 만들기 위해 등에 메는 란도셀을 도입했다.

NHK는 “가쿠슈인은 10년 후 표준화된 크기와 모양의 란도셀을 만들었는데 이 디자인은 현재도 거의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