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건강검진의 계절이다. 일 년 중 추석부터 성탄절까지 기간이 국내 모든 검진기관이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이다. 건강검진을 미리 받아도 좋을 법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회사 검진 마감 기한이 닥쳐오는 가을이 돼서야 건강검진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소세가 뚜렷한 올해 가을에는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유행으로 건강검진을 미뤘던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검진 인원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 12월까지 검진 예약이 이미 마감됐다는 검진기관도 상당수다.
위암 발생률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건강검진 프로그램에 위내시경이 포함돼 있고, 최근에는 대장암 발생률도 증가하면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원하는 수진자도 증가하고 있다. 구역감이나 고통 없이 내시경 검사를 받기를 원하는 수진자는 수면내시경을 선호한다. 대부분 검진기관은 수면내시경을 받는 수진자에게 반드시 보호자와 함께 오고, 검사 당일에는 운전을 포함한 위험한 작업은 하지 않도록 안내한다. 그러나 검진기관의 안내를 소홀히 듣고 보호자 동행 없이 자차를 운전하고 검진기관에 오는 경우가 적지 않아 건강검진을 마친 후 귀가 안내를 드릴 때 자차를 본인이 운전하여 귀가하는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일부 수진자는 회사에서 종일 휴가를 내주지 않아 수면내시경 후에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회사로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복귀 후 위험하거나 중요한 작업을 하다 혹여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많은 사람이 수면내시경 후 왜 운전을 하면 안 되는지 궁금해한다. 내시경검사 후 한숨 푹 자고 일어나 정신이 말짱하면 운전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여러 사람의 생각처럼 수면내시경 후 정신이 깨어 어지럽지 않으면 운전해도 되는 걸까.
수면내시경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진정제는 미다졸람과 프로포폴, 두 가지다. 프로포폴은 해독제가 없지만, 미다졸람은 플루마제닐이라는 해독제가 있다. 미다졸람을 썼을 경우 일반적으로 30분 정도 지나면 플루마제닐이라고 하는 해독제를 주사해 잠에서 깨운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온 수진자는 주변 사람과 대화도 나누고 검진기관으로부터 검진 결과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어, 운전을 해서 귀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면제인 미다졸람보다 해독제인 플루마제닐의 반감기가 더 짧다는 데 있다. 정신이 들어 운전을 했는데, 운전 중 플루마제닐의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졸릴 수 있다. 이때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져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수면내시경 후 운전을 했다가 사고가 나서 운전면허 취소 처분이 내려진 경우도 있었다.
수면내시경을 받은 후에는 자가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 전환과 홍보가 필요하다. 가능하면 보호자와 함께 병원을 방문하고, 보호자가 함께 오지 못하면 택시를 이용해 귀가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건강검진을 받은 날에는 업무로 복귀하지 않고 귀가할 수 있도록 회사도 종일 휴가를 줘야 한다. 일도 좋고, 성과도 좋지만 안전이 최우선이 아닐까. 복귀 후 근무 중 사고라도 나면 더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영규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