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크도 지속가능성 방향으로
‘발효 테크’, 미래 먹거리 이끄는 기술로 주목
식품의 맛과 영양소 측면에서도 이점
새로운 미생물 발효로 단백질과 천연향료ㆍ색소 개발
[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급증하는 인구와 식량 생산에 쓰이는 자원 소비량은 환경을 회복불능 수준에 빠뜨릴 정도로 파괴하고 있다”
미국의 푸드테크 기업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의 닉 할라 최고전략 책임자(CSO)는 지난 2018년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우려하며 “현재의 비효율적인 식량 생산체계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인구 증가와 기후위기로 인한 농작물 부족 현상으로 미래 먹거리는 위기에 몰리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푸드테크(Food Tech·첨단기술과 식품의 결합)가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 식량난 속에서 최근 부상하고 있는 분야는 ‘발효 테크’이다. 발효테크는 미생물을 사용해 식용색소나 향료, 단백질, 동물사료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생명공학의 한 분야로, 미래 먹거리 시장 혁신을 이끌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발효기술은 지속가능성 뿐 아니라 영양소나 제품 성능 등 식품의 기능 향상적인 측면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식품 조사업체 라보뱅크(Rabobank)측은 “발효 기술이 더 우수한 영양성분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한 바 있다.
새로운 미생물로 맛과 영양 우수한 단백질 구현
관련 산업에 뛰어든 업체들도 늘고 있다. 기존의 박테리아나 효모를 이용하는 발효기술에서 더 나아가 해조류와 곰팡이 등 새로운 미생물을 이용하는 최첨단 미생물 발효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속도가 빠른 분야는 ‘대체육’ 이다. 미생물에서 복잡한 유기 분자 구조를 만드는 ‘미생물 정밀 발효(Precision Fermentation)’가 핵심기술이다. 이를 통해 단백질 식품을 만들거나 식물기반 식품 또는 배양육의 원료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동물 단백질과 비슷한 식감과 맛을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흔히 대체육이라하면 콩이나 밀, 코코넛 등을 생각할 수 있으나 미국의 한 식품업체는 색다른 식재료를 선택했다. 바로 ‘나무’이다. 아르바이옴(Arbiom)사는 버러진 목재의 분자를 분해한 다음 식물성 단백질 화합물을 추출하고, 효모를 통해 ‘자연 발효’시킨다. 발효 과정에서 화학적인 보조제는 없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다른 동식물 단백질에 비해 ㎏당 온실가스 배출이 낮다는 것이 아르바이옴의 설명이다.
영국의 식품회사 퀀(Quorn)은 일찌감치 발효기술을 선보인 기업이다. 지난 2004년 버섯균류에서 나오는 식물성 균인 진균류(Fusarium venenatum) 발효를 통해 단백질 ‘마이코프로틴(mycoprotein)’을 생성, 대체육 제품을 개발했다. 현재 닭가슴살, 스테이크, 소시지 등 다양한 형태로 제품을 판매중이다.
미생물 단백질은 생태학적으로도 유익할 뿐 아니라 생산과 분리가 쉽다. 영양상으로도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특히 동물성 식품에 부족한 식이섬유가 들어있다. 적은 토지와 시간으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향료도 정밀 발효기술 이용
발효기술은 대체 단백질 외에 향료나 식용색소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 바이오테크 기업 에놀리(Ennolys)는 지난 2015년 정밀 발효기술을 이용해 천연원료에서 향 분자 생성 기술을 개발했다. 바닐라향의 경우, 쌀 또는 옥수수와 같은 특정 곡물의 밀기울에 존재하는 페룰산을 발효 공정시킨다음, 바닐라향을 내는 바닐린(Vanillin) 분자로 변환시킨다. 바닐라 열매로부터 천연 향을 추출하려면 생산량의 제한이 따르지만 곡물로부터 바닐린 분자를 추출하는 방식은 지속적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에놀리는 이 기술을 통해 바닐라향, 아몬드향, 우유향, 코코넛향 등 10여 종의 제품을 선보였다.
햄버거 패티 속 천연 색소 “빨간색은 시작일 뿐”
건강 트렌드로 천연 색소 시장의 성장이 인공 색소를 추월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곤충 추출 착색제나 식물성 원료 착색제를 통한 기존 제품들은 비싼 가격과 불안정적인 색상 공급 등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발효기술로 천연 색소를 개발하는 업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덴마크 기업 크로몰로직스(Chromologics)가 대표적이다. 크로몰로직스에 따르면 새로운 곰팡이 색소 그룹을 발견한 후 정밀발효 기술을 통해 천연 색소를 만들었으며, 이는 온도나 산소에도 안정적이다. 햄버거 패티에 들어가는 빨간 색 뿐 아니라 노란색이나 오렌지색 등 다양한 색상을 추가할 계획이다.
덴마크 스타트업 ‘미크로마(Michroma)’도 있다. CEO인 리키 카시니(Ricky Cassini)는 “이제 해조류나 사상균(filamentous fungi) 와 같은 ‘신생 미생물’을 기반으로 한 천연 색소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며 “이러한 기술은 경작지 확보나 비료, 살충제의 사용을 줄일 수 있어 미래 먹거리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