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계빚 규제 본격화 이후

고신용자 저축銀·카드론 이동

총량 조절로 심사기준 강화

저신용자 텃밭서 상대적 소외

자산시장 안정화가 문제 해결

서민만 잡은 ‘대출 총량규제’...계층간 사다리에 ‘발길질’ [가계부채, 규제의 역설]
NH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지역 농·축협)에 이어 대출을 일부 중단하는 은행이 또 나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다른 곳은 ‘적정 공급’이 계속된다며 진화에 나섰다. [연합]

정부가 가계부채 총량을 강하게 억누르면서, 저소득·저신용자의 현금 흐름에 경고등이 켜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대출 증가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 상승에서 비롯됐고 자산 시장 활황이 코로나 대유행을 극복하기 위한 전세계의 확장적 재정정책에서 이어진 것임을 고려하면, 총량 규제는 진단과 방법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돈줄 옥죄기에 따른 타격이 고소득·고신용자가 아닌 현금이 부족한 이들에게 집중된다는 데 있다. 계층 간 사다리 걷어차기 논란이 다시 일어나는 까닭이다.

실제 최근 급증한 가계부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빚은 자산시장 가격 상승에 편승하려는 고소득·고신용자를 중심으로 늘었다. 한국은행의 ‘차주 신용도별 대출증가율’을 살펴보면 고신용자의 대출은 지난해 3분기부터 20% 안팎으로 급증한다. 2019년 10~12%대이던 증가율이 2020년 2분기 14.9%에서 3분기 19.3%로 갑자기 뛰어오르고 지난해 4분기에는 21.2%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가장 최근 통계인 올 1분기 고신용자의 대출 증가율은 19.6%다.

반면, 저신용자는 이 기간 꾸준히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고신용자가 21.2%로 가장 큰 폭으로 대출을 확대한 지난해 4분기엔 아이러니하게도 -10.7%라는 가장 큰 감소세를 기록했다.

눈여겨볼 것은 시점이다.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대출 증가율 격차가 최대로 확대된 지난해 4분기는 자산가격 상승과 동시에 고신용자 대출 규제가 본격화된 때다.

2020년 11월 당국은 연 소득 8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자에게 1억원 초과 신용대출에 대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 적용 방침을 밝혔는데, 당시 5대 은행 신용대출 잔액이 일주일만에 1조5000억원이 늘었다. 마이너스 통장 개설 수도 2배 가까이 늘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달 23일, 코로나 대유행으로 1500선 밑까지 떨어졌던 코스피는 사상 첫 2600선을 돌파했고 3000선을 넘기며 랠리를 이어갔다. 부동산 시장도 연말부터 오르기 시작해,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수도권 아파트값은 7개월간 11% 이상 급등했다.

대출 조건이 좋은 이들이 빚을 확대해 투자에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2020년 고신용자대출이 21.2%로 (17~19년 중 연평균 11.2%)에 비해 크게 증가했는데 특히 주택가격 크게 상승한 지역에서 뚜렷히 증가하면서 상당 부분 주택,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신용대출이 막히자, 올해부턴 중저신용자가 이용하는 저축은행과 카드론 등으로 고신용자가 이동하고 있다. 카드사·캐피탈 등 여신전문금융사의 올해 1~5월 가계대출 증가액은 4조3000억 원으로 전년동기(1000억 원)보다 42배나 폭증했다. 같은 기간 기준 국내 38개 저축은행의 금리 10% 이하 가계 신용대출 잔액 비중은 12.6%로, 전년 동기보다 4.9%포인트가 올랐다. 고신용자 대출이 늘어난 것이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대출 총량 조절은 결국 대출 심사가 깐깐해지는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소외계층이 두터워지는 것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자산시장 가격 안정화가 먼저 나타나야 대출 시장 안정화로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계 대출 증가세가 타 국가 대비 규모와 속도 면에서 경계해야 될 것은 맞다. 그러나 자산시장 가격 상승 흐름에서 늘어난 것인 만큼, 총량 규제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자산시장 가격 상승세가 누그러져야 대출 규모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성연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