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 무력시위 예언했지만…

김일성 생일 전후 무력시위 없어

北, 침묵으로 '비핵화' 대화 의지

'북, 믿을 수 없다'는 바이든 정부

속내는 최대위협 간주한 中 견제?

서해 집결 주한미군, 中견제 첨병

[김수한의 리썰웨펀] 美, 北도발 기다렸나? 달라진 김정은 모습에 '머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조부 김일성 생일을 맞아 그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참배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북한이 15일 김일성 전 주석의 109회 생일(태양절)을 맞아 탄도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를 하지 않아 의외란 반응이 나온다. 북한은 통상적으로 주요 기념일에 맞춰 무력시위에 나서면서 그 행위에 의미 부여를 하는 행태를 보여왔는데, 이번엔 예상을 빗나간 것이다.

특히 미국은 최근 며칠간 북한의 무력시위 가능성을 여러 채널을 통해 '예언'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수표만 날린 셈이 됐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부터 미국에 요구해왔던 대북 제재 해제와 국제무대에서의 북한 지위 정상화라는 지상과제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핵실험이나 국제사회가 규탄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카드는 뒤로 물린 채, 정상 국가로의 지위 도약을 통한 국제사회로의 편입과 경제발전 최우선 기조를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중국, 러시아, 이란과 함께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군에 올려두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도 폄하하고 있다. 북한이 진심으로 비핵화할 의지는 없으며, 과거에 했던 대로 앞에서는 '대화', 뒤에서는 '도발'을 일삼는 '깡패국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식을 여전히 대전제로 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라는 '악의 한 축'이 살아 있는 것이 미국 국익 극대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은 북한이 있어야 한반도에 현존 세계 최대 규모인 평택미군기지를 유지할 수 있고, 이 병력의 유지를 통해 미국이 현존 최대 위협으로 규정한 중국 견제 전략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군은 10여년에 걸쳐 휴전선 등 최전방에 배치돼 있던 미군을 중부(평택)와 남부(대구)로 재배치했다. 평택 팽성읍 일대에 새롭게 조성된 캠프 험프리스는 미군의 해외 주둔 미군기지 중 최대 규모로 꼽힌다.

대한민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지원해 가능해진 일이다. 그러나 미군은 한반도 주둔 미군의 재배치 작업을 하면서 '중국 견제'라는 전략목표 수행에 가장 효율적인 기지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평택항의 미 해군과 평택 미 육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인근의 오산 미공군기지 등 미 육·해·공 전력이 집결한 서해안은 중국 견제에 더없이 좋은 세계 최적의 장소다.

한국 정부 또한 미군에 그 어느 나라 정부보다도 협조적이다.

▶미국에게 북한이란? 그리고 한반도란?=대한민국 정부는 수십조원을 들여 조성한 캠프 험프리스 부지와 기반시설을 미군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또한 해마다 1조원이 넘는 돈을 방위비 분담금으로 미군에 지급하고 있다.

한·미 이견차로 오래 끌어왔던 방위비 협상 또한 '한국의 손해가 크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미국 말을 들어줬다(한·미는 올해 분담금을 13.9% 인상하고 4년간 해마다 국방예산 증가율을 반영해 올리기로 합의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마무리짓기로 했던 전시작전권 환수는 장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국 측에서 전작권 전환은 시기상조라며 전환 시기를 늦추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어서다.

이 모든 지각변동 현상은 수면 아래 미국의 국익 추구행위를 떼놓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세계 최대 최첨단 무기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미국에서 한반도 등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갈등 국가들은 손가락에 꼽히는 최대 고객이다.

안보 상황뿐만 아니라 최첨단 미국 무기를 살 만한 경제력을 갖춘 국가로서도 한국은 미 방위산업계의 최대 고객이다. 북한이라는 '악당'이 사라지면, 한국이라는 고객이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미 방산업계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무력시위에 나선다면, 미국으로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이다.

미국은 최근 며칠간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의 무력시위 가능성을 예고해왔다.

미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13일(현지시간) 공개한 27쪽 분량의 '미 정보 당국의 연례위협평가' 보고서에서 "북한이 가까운 미래에 WMD(대량살상무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김정은이 계속 강력하게 핵무기에 전념하고 있고 북한이 탄도미사일 연구개발에 활발히 관여하고 있으며 생화학무기를 위한 북한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김정은은 미국이 북한의 조건대로 그와 협상하게 만들려고 올해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여부를 검토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무력시위 도발에 대해 "미국과 동맹국 사이를 틀어지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북한이 2019년 12월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유예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면서 "김정은은 지금까지는 장거리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고 미국과의 향후 비핵화 협상에 문을 열어뒀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최대 위협으로 중국을 꼽고, 그 밖에 러시아, 이란, 북한을 위협 세력으로 특정했다.

다음날인 14일 글렌 밴허크 미국 북부사령관은 북한이 ICBM 시험발사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 관심을 모았다.

밴허크 사령관은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 제출한 서면자료에서 "북한 정권은 2018년 발표한 일방적인 핵 및 ICBM 실험 모라토리엄(일시적 유예)에 더는 구속되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쳤다"며 "이는 김정은이 머지않아 향상된 ICBM의 비행 시험을 시작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제출한 자료는 지난달 16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 때 낸 것과 똑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서면자료의 이런 표현은 나올 때마다 주목받는다.

애브릴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 역시 같은 날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 사이를 틀어지도록 하기 위해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헤인스 국장은 이날 상원 정보위원회가 정보 당국 책임자들을 불러 '전 세계적 위협'을 주제로 개최한 청문회에서 "북한은 자신의 안보 환경을 재구성하기 위해 공격적인 행동들을 취할 수 있으며 미국과 동맹국 사이를 틀어지도록 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가정보국장실(ODNI)이 전날 공개한 보고서와 같은 내용이다.

[김수한의 리썰웨펀] 美, 北도발 기다렸나? 달라진 김정은 모습에 '머쓱'
북한이 지난달 25일 새로 개발한 신형전술유도탄 시험발사를 진행했다며 공개한 사진.[연합]

▶미국 北도발 가능성 예언했지만…조용한 북한=하지만 김일성 생일 전후로 북한은 무력시위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군 최고사령부 격인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 동향에 대해 "추가로 언급할 만한 활동이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북한은 지난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 취소하거나 축소했던 행사를 올해 상당 부분 정상화하며 코로나 봉쇄와 경제난으로 침체한 사회 전반에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인 태양절을 경축해 15일 저녁 평양에서 청년 학생들의 야회 및 축포 발사가 진행된다"고 전했다.

북한 집권당인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김 주석의 일화, 그를 회상하는 주민 발언 등을 소개하며 인물 추모에 중점을 맞췄다.

평양 시내 곳곳에는 '위대한 수령' '영원한 주석' 등 생일축하 간판과 기념조형물을 설치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조부 김일성 생일을 맞아 부인 리설주와 최측근 3인방 등을 대동하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김정은 동지께서는 리설주 여사와 함께 태양절에 즈음하여 4월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셨다"고 보도했다.

리 여사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월 김정일 위원장 생일(광명성절) 기념공연을 부부 동반으로 관람한 이후 2개월 만이다.

특히 이번 참배에는 리 여사와 함께 조용원 당 조직비서, 박정천 군 총참모장,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 현송월 당 부부장 등 5인만이 동행했다. 고위급인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빼놓고 이들만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상무위원 중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덕훈 내각 총리 등 다른 고위 간부들은 김 위원장과 별도로 금수산궁전을 참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