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군용 수통은 국방부 행정 난맥상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우리 군은 6.25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수통을 물려받아 2010년대까지 일선 군부대에서 사용해왔다. 그래서 국방부 국정감사를 하면 노후된 군용 수통은 단골 소재다.
2008년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는 군용수통의 85%(알루미늄 수통 75%, 일체형 수통 10%)에서 식중독을 유발하는 바실레스세레우스균이 검출돼 화제가 됐다.
이후 전 군을 대상으로 '수통을 락스로 헹구라'는 지시가 정식 공문으로 내려간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군용 수통은 알루미늄 수통이 53만여개, 플라스틱 수통 10만9000여개, 일체형 수통 7만여개로 알려졌다.
2010년과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30~40년 이상의 노후 수통이 여전히 군부대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또 한 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수통의 전면 교체가 결정됐다. 당시 전 군의 수통을 교체하는 비용으로 13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2014년에는 사정이 좀 나아졌을까.
그해 국정감사에서는 127만여개의 신형 수통이 10년간 어딘가에 보관돼 있었으며, 실제 군부대에 보급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 수통이 보급되지 않는 사이 일선 군부대에서는 여전히 수십년 된 수통이 사용되고 있었다.
▶2008년부터 10여년간 군용 수통은 뜨거운 감자=당시 군 당국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구입한 수통 96만개를 이미 보급해 사용 중이며, 31만 개는 아직 구입 전이라고 해명했다.
군 당국은 또 한 번 매서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수통 보급 문제는 그 후로도 지금까지 계속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2014년 예산 25억원을 들여 군용 수통을 전량 교체했지만, 여전히 일선 군부대에서 6.25 당시 미군이 쓰던 수통을 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또 나왔다. 알고 보니 군 당국은 예산을 확보해 새 수통을 전량 구매했지만, 유사시에 쓴다는 명목으로 보급을 제때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광진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청와대 청년비서관)은 2017년 7월 1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19대 국회때 (2014년) 국방위를 하면서 예결위를 겸해서 했다"며 "(군용 수통은) 약 25만개가 교체 대상이었다. 그런데 당시 3만개 정도 구입하겠다는 정부 예산안이 올라왔다. 제가 기재부 관계자와 만나 내 쪽지예산으로 수통 전체를 다 살련다. 그러니 (3만개 구매계획을) 철회해 달라고 해서 그때 수통 25만개 전수를 다 사서 일시에 다 구매를 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예산 책정 이듬해인 2015년 가을께 일선부대에 새 수통이 모두 지급된 것으로 알았는데, 아직 안 바뀌었다는 민원이 계속 들어와 연락이 오는 부대마다 물어봤더니 (상급부대인) 사단에서 '구입한 거 맞다. 새 거로 다 했다. 그런데 전쟁 나면 쓰려고 창고에 보관하고 있고 아직까지 원래 쓰던 거 쓰고 있다'고 답변을 하더라"며 허탈해 했다.
이런 식으로 신형 보급품을 제때 보급하지 않을 경우, 여러 부작용이 뒤따른다.
1차적으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납품업체의 하자 보수 기간이 끝나 국산 장구류 품질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용품 사용자의 개선요구사항이 접수되고 그 요구를 반영하는 절차가 지속되면서 안정적인 제품 질이 보장되는데 그런 과정을 아예 안 거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시범 보급 때는 우수한 제품으로 납품하고, 대량 납품 때는 품질이 낮은 제품을 납품해 방산 비리 문제로 비화될 소지도 없지 않다.
군용 수통은 어김없이 올해에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7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육군 수통은 2016년 소요가 결정되어 2019년 연구개발이 완료됐고, 2021년부터 10년간 매년 5만개씩 전력화될 예정이다.
2014년 보급된 수통 96만개, 이후 김광진 의원이 요구해 추가로 보급된 수통 25만개는 어디로 간 것일까.
또한 군은 거기에 더해 2016년 새롭게 수통 소요를 결정, 2021년부터 10년간 매년 5만개씩 50만개를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통 예산이 책정되고 보급되기를 반복하면서 상당한 예산이 소요됐지만, 실제 효과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아울러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수통 보급에 장장 15년이 걸린다는 웃지못할 현실 또한 기가막힐 노릇이다.
▶군, 수통 2016년부터 또 보급 추진…2030년에야 보급 완료예정 '기막혀'=자료에 따르면, 군 당국은 2016년 7월 수통 신규 소요를 결정했다. 2016년 1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3년간은 연구개발 기간이다. 군은 2019년 11월 과제 개발에 성공했고, 올해 7월 수통 관련 국방규격을 제정했다고 한다.
2016년 소요 결정된 수통이 계획대로 보급되려면 2030년까지 약 15년이 걸리는 셈이다.
자료에 따르면, 수통 외에도 전투복, 해군 함상복 및 함상화, 전투식량, 포병연습탄 등의 보급도 소요 결정부터 보급까지 5년에서 9년 정도의 장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육군 신형 전투복은 2017년 10월 소요가 결정돼 6년 후인 2023년 이후 전력화될 예정이다.
해군 신형 함상복 및 함상화는 2013년 12월 소요가 결정돼 7년 후인 2020년 이후 전력화된다.
전투식량 L형은 2013년 7월 소요가 결정돼 9년 후인 2022년 이후 보급된다. 155㎜ 포병연습탄은 2014년 2월 소요 결정돼 9년 후인 2023년 이후 전력화된다.
안규백 의원은 "육군 수통은 전력화까지 10년, 수통이 모두 보급될 때까지 무려 15년이 걸린다"라며 "시중에 나가면 바로 살 수 있는 물품들이 군에 보급되려면 수년에서 10년 이상 걸린다. 전력지원체계 획득 최적화를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