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보아라“ 故 김복동 할머니, 마지막 가는 길에도 日 대사관서 ‘사죄’ 요구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길원옥 할머니,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1일 오전 6시 30분.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고발하기 위해 일평생 인권운동에 헌신한 김복동 할머니(94)의 발인이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이용수(92) 할머니는 말없이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관을 실은 운구차를 어루만졌다. 일본의 사죄가 있기 전엔 그 어떤 말도 고인에게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이 할머니의 얼굴엔 슬픔보다 무거운 비장함이 서렸다.김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가족과 정의기억연대, 평화나비네트워크 등 관계자 30여명이 모였다.

”일본은 보아라“ 故 김복동 할머니, 마지막 가는 길에도 日 대사관서 ‘사죄’ 요구

이날 오전 6시 32분께 김 할머니의 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곳곳에선 울음을 참아내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상주 역을 맡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대표는 김 할머니의 관 위에 “훨훨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길이길이 행복을 누리소서”라고 마지막 인사를 적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후 운구 차량으로 향하는 김 할머니의 관 바로 뒤에 서서 말없이 애통한 표정을 지었다. 닫힌 차문을 언니 쓰다듬듯 마지막으로 한번 쓰다듬었다.

발인식 후 김 할머니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일평생 벗이었던 길원옥(91) 할머니가 있는 ‘평화의 우리집’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평화의 우리집은 김 할머니가 생전에 머물렀던 위안부 피해자 쉼터다.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 김 할머니와 이곳에 머물던 길 할머니는 고인의 영정을 든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를 보고 한달음에 걸어나왔다. 양손으로 영정사진을 꼭 쥔 길 할머니는 “좋은데 먼저 좋은 데 가서 편안히 계세요. 나도 이따가 갈게요”라고 말했다.

”일본은 보아라“ 故 김복동 할머니, 마지막 가는 길에도 日 대사관서 ‘사죄’ 요구

이 말을 들은 윤홍조 대표가 “안돼요, 할머니. 오래사셔야돼요”라고 말하자 길 할머니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할머니가 머물던 윗층 방 장롱을 열자 고인이 생전 입었던 옷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윤 대표는 옷들을 바라보며 “할머니 좋은 외출복, 수요시위 갈때 입었던 저 옷들 어떡하지? 그대로 잘 둘게, 할머니”라고 말하자 현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고인을 태운 운구차는 이어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영결식의 마지막 장소인 서울 종로구 소재 구(舊) 일본대사관을 향한 노제를 위해서다. 서울시청 앞에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일본의 만행에 항의하기 위한 시민들도 함께했다. 이날 오전 8시 30분 시작한 노제는 서울광장부터 광화문, 안국역을 차례로 지난 후 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한 고인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구(舊) 일본대사관에서 엄수된다. 매주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리는 곳이자 김 할머니도 생전 자리를 지켰던 장소다. 영결식을 마친 김 할머니의 유해는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