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한일군사정보협정(GSOMIA) 재추진에 미국이 관여한 것은 아니다.”

국방부는 시종 이렇게 밝히고 있지만 미국이 한일군사정보협정 재추진에 관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4일 정례브리핑에서 지난 10월 20일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포함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직후 한일군사정보협정이 급물살을 탄 것과 관련해 ‘미국의 압력이 따로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SCM은 한미간에 관련된 의제를 논의하는 것이고, 그(한일군사정보협정)와 관련된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의 압력이 있었음에도 국방부가 몰랐거나 알면서 모른 체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5일 한 매체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올해 들어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임기(내년 1월까지) 안에 한일군사정보협정 체결을 바란다는 입장을 외교 경로를 통해한국과 일본에 전달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한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고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3각 공조 복원에 공을 들여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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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미국 측은 한일 위안부 문제 등이 한일 외교관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 문제 해결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한미일 3국 공조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 후 “3국 정상은 3자 협력이 강화돼야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고 북한의 핵 확산과 핵 위협을 억제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이러한 3자 협력을 통해 핵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 수 있고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주한미군 사드, 한일군사정보협정 등 한미일 3국 공조를 위한 수단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정국 등으로 한국과 미국의 정국 상황이 혼란한 가운데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점도 미국의 개입에 따른 이상 징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14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이 군사정보협정에 가서명한 것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혔다.

게리 로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양국 정부의 협정 가서명 보도를 봐서 관련 내용을 알고 있다”면서 “협정이 공식 체결되면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두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협력, 특히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 속에서 양국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 10월 27일 지난 2012년 밀실추진 논란으로 무산된 지 4년째를 맞은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재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한미 SCM이 종료된 지 일주일만이다.

국방부는 갑자기 왜 4년 동안 잠들어 있던 사안을 최순실 게이트와 국민 100만명 반정부시위 등으로 정국이 혼란한 이 시기에 굳이 추진하느냐는 질문에 북한의 위협에 따른 군사적 필요성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 1월과 9월 실시된 북한의 4, 5차 핵실험, 올해 20차례 이상 시험발사된 북한의 미사일 등의 위협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한국보다 정보자산이 많은 일본 측 정보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 14일 기자들을 만나 같은 질문에 “북한의 위협에 따른 군사적 필요성 때문”이라고 답해 이런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최순실씨의 태블릿PC가 공개된 24일로부터 사흘 후 전격 협정체결 재추진을 밝혔다는 점, 정작 지난 9월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에도 협정 체결과 관련해서는 국방부가 어떤 형태의 입장 발표도 하지 않은 점, 10월 20일 SCM 직후 협정 체결이 발표된 점 등을 들어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한 장관은 이에 대해 정부 내에서도 유관부처가 협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됐고, 국민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해 정부 입장이 10월 27일 최종 확정될 때까지 보안을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왜 하필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혼란한 가운데 이렇게 민감한 사안을 갑자기 추진하기로 결정했느냐는 질문에는 “정치는 정치고, 안보는 안보”라며 “안보는 쉼없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러한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에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협정 체결을 위해 국민적 공감대를 고려하겠다는 기존의 국방부 입장이 번복됐기 때문이다.

한 장관은 14일 국민적 동의를 전제로 추진한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해 국민적 동의보다 군사적 필요성이 우선이라고 말을 바꿨다.

현재 협정 체결을 지지하는 여론은 15%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입장 번복은 정부가 협정 체결을 강행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 맥락에서 정부가 협정 체결 쪽으로 급선회한 배경에는 한일간의 협정 조기 체결을 바라는 미국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