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튀르키예 공동 유적발굴 성과 공개
내륙서 해양문명 헬레니즘 실체 확인
3D 디지털실측 등 韓 첨단기술력 인증
“우리 연구 범위, 세계 문명으로 확장”
한국 고고학 연구진이 튀르키예 중부 아나톨리아 퀼테페 유적 조사에서 처음으로 해양 문명인 헬레니즘 유적을 발견했다. 실크로드 인접지와 북방 지역 위주였던 기존 국외 조사를 고대 문명지로 확장해 거둔 첫 성과로, 정밀 지하 물리탐사와 3D 디지털 실측, 융복합 보존과학 등 한국 고고학의 첨단 기술력이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27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한-튀르키예 공동연구 조사성과 설명회’를 열고 튀르키예 퀼테페(Kültepe) 유적 발굴 성과와 양국 학술 협력 추진 경과를 공개했다.
퀼테페는 여의도 면적의 1.3배(약 360만㎡) 규모로 기원전 3000년경 청동기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 이어진 고대 도시 유적이다. 고대 카네시 왕국의 수도이자 2만3500여 점의 설형문자 점토판(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출토된 상업 거점으로,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박윤정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고고연구실장은 “그동안 연구원의 국외 조사는 실크로드나 한국 고대사 관련 유적 위주로 진행됐다”며 “이번 튀르키예 조사는 우리 고고학의 연구 범위를 세계 고대 문명으로 확장하고 글로벌 연구망을 구축하는 계기”라고 말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앙카라대 공동 연구진은 2024년 4월 교류협력 업무약정을 체결한 뒤 2025년부터 청동기시대 와르샤마(Warshama) 궁전 동쪽 구역을 조사해 왔다. 연구진은 지표 2m 깊이에서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323~30년) 모자이크 유구와 4개 층으로 중첩된 문화층을 확인했다. 퀼테페 유적에서 헬레니즘 시대 모자이크 유구가 확인된 것은 1948년 첫 발굴 이후 78년 만이다.
김대영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학예연구사는 “상층부에서 총 4개의 헬레니즘 시대 문화층이 중첩돼 잔존함을 확인했다”며 “바닥을 고른 뒤 깬돌과 사질 점토를 깔고 강돌을 채운 뒤 석회 반죽으로 마감한 구조로 에페소스 유적의 건물지와 유사한 축조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확인된 모자이크 규모는 남북 165㎝, 동서 163㎝이며 주변 잔존 흔적을 고려할 때 원규모는 250㎝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조사는 해안 무역 도시 중심으로 번영했던 헬레니즘 문명이 내륙 분지인 중앙 아나톨리아에서도 거점 형태로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근거로 평가받는다. 모자이크 주변에서는 최소 3개동 이상의 대형 건물이 맞물린 복합 건물지 흔적과 함께 그리스 아테네 및 키프로스산 수입 토기가 출토됐다.
피크리 쿨라코울루 앙카라대학교 교수는 “문헌으로 전해지던 퀼테페 내륙 헬레니즘 유적의 실체를 78년 발굴 역사상 처음 확인했다”며 “모자이크 유구와 그리스·키프로스산 수입 토기 출토는 기원전 300년경 이곳이 지중해 본토와 물자를 교류하던 거점이었음을 보여주는 실물 자료”라고 말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튀르키예 앙카라대 발굴단은 청동기 시대 와르샤마 궁전의 전모를 규명하기 위해 사전에 지하 물리탐사를 진행해 이상 반응이 집중된 위치를 발굴 구역으로 정했다. 하부 목표층으로 직행하지 않고 상층 층위를 단계별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헬레니즘 문화층을 훼손 없이 수습했다. 단기간에 거둔 이번 성과의 배경에는 사전에 매장 유구를 정밀하게 특정하고 출토 유물을 신속·정확하게 기록·분석해 낸 한국 연구진의 첨단 기술력이 있었다.
현장 조사와 통역을 맡은 최지연 앙카라대 퀼테페 유적 연구원은 “대학 연구실 위주인 다른 외국 팀과 달리 한국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사전에 정밀한 지하 물리탐사를 거쳐 전략적으로 위치를 선정했다”라며 “한 발굴 시즌마다 수만 점씩 쏟아지는 토기를 첨단 디지털 3D 스캔 기술로 처리해 시간과 오차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현장에서 수습한 물질을 전문 분석실과 교차 검증하면서 3~4배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뷜렌트 괴뉠타시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문화유산박물관총국 부총국장은 “28개국 연구진이 참여하는 현장에서 한국의 학술 역량과 디지털 복원 기술은 양국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협력 모델을 보여준다”며 협력 지원에 사의를 표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앙카라대는 2027년 5월부터 7월까지 3차 공동 발굴 조사를 진행한다. 시굴 구덩이를 통합·확장해 헬레니즘 건물지 도면을 파악하고 하부의 청동기 와르샤마 궁전 조사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또한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문화유산박물관총국과 업무약정(MOU)을 맺고, 양국 수교 70주년을 맞는 2027년 중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퀼테페 유적 특별전’ 공동 개최를 논의하기로 했다. 김명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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