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 내한·‘오페라의 유령’ 40주년

‘스위니토드’ 조승우·전미도 재회

대형 뮤지컬 제작사 간판작 총출동

마침내 한국 내한을 앞둔 뮤지컬 ‘해밀턴’ [Daniel Boud]
마침내 한국 내한을 앞둔 뮤지컬 ‘해밀턴’ [Daniel Boud]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초에 6.3단어. 뮤지컬 ‘해밀턴’의 넘버 ‘건스 앤드 십스(Guns and Ships)’가 휘몰아치는 대목의 속도다. 힙합과 재즈, 리듬앤드블루스(R&B)를 넘나드는 46곡에 실린 가사만 약 2만520단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 티켓’으로 불린 이 작품이 마침내 한국에 온다.

‘해밀턴’이 상륙하는 올 연말, 한국 뮤지컬 무대는 대작들의 각축장이 됐다. 글로벌 40주년을 맞은 ‘오페라의 유령’, 3년 만에 돌아오는 ‘캣츠’, 조승우·전미도가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스위니토드’, 브로드웨이 무대를 밟고 돌아온 아이비의 ‘시카고’, 여덟 번째 시즌을 맞은 ‘레베카’까지. 국내 뮤지컬계 톱5 제작사들이 저마다의 간판 작품을 일제히 내걸었다.

대작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다른 제작사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대작들이 쏟아지고 있어 신작 초연작, 상대적으로 스타 파워가 약한 작품은 이 대전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조금 더 빨리 치고 나가 미리 관객을 만나거나 자기만의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에스앤코 제공]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에스앤코 제공]

티켓 구하기 어려운 ‘해밀턴’ vs 구관이 명관 ‘유령’, ‘캣츠’

‘해밀턴’(12월 17일 부산 드림씨어터·내년 1월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개막)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그린다. 카리브해의 고아에서 권력의 정점까지 오른 인물의 삶을 ‘랩 배틀’로 풀어냈다. 젊은 혁명가들은 공격적인 랩을, 토머스 제퍼슨은 한 세대 앞선 재즈를, 영국 왕은 브릿팝을 부른다. 음악이 곧 인물의 세대와 처지를 말해주는 구조다.

2015년 브로드웨이 개막 이후 11년 만의 한국 땅을 밟는 이 걸작은 토니상 역대 최다인 1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등 11개 부문을 휩쓸었다.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도 가져갔다.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며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고, 심지어 프리미엄석 가격은 최고 998달러(한화 약 132만원)까지 치솟았다.

촌철살인의 가사를 원어로 봐야 하는 작품이라 국내 공연은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다. 신동원 에스앤코 대표는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해밀턴’의 한국 공연을 월드 투어 프로덕션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은 프로듀서로서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기다려온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도 설레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캣츠’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캣츠’ [에스앤코 제공]

‘오페라의 유령’(12월 22일 개막,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은 한국 뮤지컬 산업의 원점이다. 1986년 10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막을 올려 올해 글로벌 40주년을 맞았고, 한국 초연은 25주년을 맞는다. 이번 한국어 공연은 내년 2월 28일까지 단 두 달간 열린다.

2001년 한국 초연은 국내 공연 산업의 판을 바꿨다. 7개월간 244회 공연에 24만 명이 몰렸고, 제작비 140억원을 들여 190억원 상당의 매출을 올렸다. 누적 관객은 2023년 부산 공연에서 150만 명을 넘어섰다. 이번 시즌 유령의 가면은 최재림·전동석·박강현이 쓴다. 크리스틴 역의 이해원과 최선호에겐 이번이 뮤지컬 데뷔 무대다. 사라 브라이트먼, 김소현처럼 신인을 주인공으로 세워 온 ‘오페라의 유령’의 전통을 잇는다.

같은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캣츠’(12월 18일 개막, 대구 계명아트센터)도 3년 만에 내한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넘긴 뮤지컬로, 대구 공연을 마친 뒤 부산·세종·서울로 투어를 이어간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조승우 전미도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스위니토드’ 조승우 전미도 [오디컴퍼니 제공]

12월 개막 러시…승부는 스타 파워

속사포처럼 주고받는 라임, 반 박자 어긋나며 맞물리는 호흡. 2016년 조승우와 전미도가 부른 ‘어 리틀 프리스트(A Little Priest)’는 한국 뮤지컬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오디컴퍼니의 ‘스위니토드’(12월 4일 개막,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두 배우가 10년 만에 그 장면을 다시 빚는다. 2016년 오디컴퍼니 프로덕션으로 첫선을 보인 지 10년이 된 무대로, 조승우·전미도 페어 회차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의 크리스틴 김소현은 이번 시즌 러빗 부인으로 합류한다.

신시컴퍼니의 ‘시카고’(12월 5일 개막, LG아트센터)는 2000년 한국 초연 이후 1729회 공연에 180만여 명이 관람한 스테디셀러다. 이번 무대엔 브로드웨이에서 돌아온 아이비가 선다. 아이비는 지난 8~9월 뉴욕 앰배서더 극장에서 브로드웨이 ‘시카고’의 록시 하트를 연기했다. 이 작품에 한국 배우가 캐스팅된 건 처음이었다. 2012년 한국 프로덕션에서 처음 록시를 맡아 6개 시즌, 592회 무대에 선 끝에 얻은 기회다.

지난 여름 브로드웨이에서 ‘시카고’ 데뷔 무대를 가진 아이비가 올겨울 한국으로 금의환향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지난 여름 브로드웨이에서 ‘시카고’ 데뷔 무대를 가진 아이비가 올겨울 한국으로 금의환향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EMK뮤지컬컴퍼니의 ‘레베카’(11월 24일 개막, 충무아트센터)는 여덟 번째 시즌을 맞았다. 댄버스 부인 역의 신영숙·옥주현에 김우형·테이·민우혁이 막심으로 가세했고, 옥주현의 출연 회차는 1차 티켓 오픈에서 매진됐다. 쇼노트의 ‘두 도시 이야기’(11월 11일 개막, 광림아트센터 BBCH홀)는 카이·신성록·고은성을 앞세워 12년 만에 돌아오고, ‘미세스 다웃파이어’(12월 3일 개막, GS아트센터)는 황정민·정성화·정상훈과 세 번째 시즌을 연다.

연말은 공연계의 ‘최대 대목’이다. 실제로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공연 티켓 판매액은 533억원으로, 전달인 11월(373억원)보다 약 43% 늘었다. 다만 올해는 1월부터 10월 24일까지 뮤지컬 공연 건수는 9.7% 늘었지만, 티켓 판매액은 3727억원으로 7.2% 줄어든 모습이었다. 공급은 늘었지만, 수요가 뒤따르지 못한 셈이다.

결국 관건은 배우다. 뮤지컬 시장이 팬덤과 스타 파워를 중심으로 고착되며, 티켓 파워가 검증된 배우 없이는 걸출한 대작이라도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캐스팅을 다채롭게 꾸려도 최근 몇 년 새 슈퍼스타급 배우의 출연 회차가 아니면 매진을 기록하기 힘든 공연이 늘고 있다”며 “신작 초연에 유독 인색한 한국 관객의 특성상, 그 어느 때보다 대작이 쏟아지는 올 연말은 명작들끼리 순위를 다투는 치열한 승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