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이례적으로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신 총재는 22일 기준금리를 연 3.00%로 동결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재정은 지속 가능성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며 “일시적 재원으로 지속적인 지출 증가가 생긴다면 나중에 되돌리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했다. 반도체 경기 호조에 따른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정부가 지출 확대에 나서는 상황에서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다.
신 총재는 7·8월 금통위에서 연속 금리를 인상할 당시만 해도 “재정 확대가 잠재 성장률을 높이면 반드시 엇박자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재정이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키운다면 물가 안정을 위한 통화 긴축과 반드시 충돌하지는 않는다는 취지였다. 이번 발언은 그때와 결이 달라졌다. 재정 확대 효과보다 재원과 지출 구조의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경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일시적인 수입을 바탕으로 상시 지출을 늘리는 정책의 위험을 짚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 등을 바탕으로 내년 예산을 역대 최대인 약 820조원 규모로 편성했다. 여기에 추가 세수를 바탕으로 조성하는 미래대응기금이 200조원에 달하고, 내년에 직접 투입되는 사업비만 45조4000억원이다. 이 중엔 미래 위기와 성장동력에 대비한다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사업도 적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기금 운용계획을 일정 범위 안에서 국회 심의 없이 변경할 수 있어 지출 확대에 제동도 어렵다. 무분별한 지출이 늘어나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물론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신 총재가 지적한 석유 최고가격제 장기화의 부작용도 간과할 일이 아니다.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덜려는 정책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정부가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조치를 오래 끌면 시장의 가격 신호가 왜곡되고 재정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당장의 물가 부담을 낮추는 데만 급급하다 끝내야 할 시기를 놓치면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국가 재정의 안정과 지속가능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프랑스의 폭력 시위는 재정 부담으로 빚이 늘어 교육 등 꼭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여유가 있을 때 재정 건전성을 지키고 대응 여력을 확보해야 위기가 닥쳤을 때 필요한 곳에 돈을 쓸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세수 증가는 경제 전반의 체력이 높아진 결과라기보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 경기에 민감한 산업에 기대 여유를 부릴 게 아니라 더 촘촘하게 관리하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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