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제재 버틴 우회거래망 가동
원유 재고 1억→4500만배럴 급감
美 봉쇄·선박 호위 비용도 눈덩이
VLCC 운항비 1년 새 24배 폭등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의 해상 봉쇄로 원유 수출길이 사실상 막히고 물가상승률이 90%까지 치솟았지만 이란 정권이 ‘버티기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 50년간 미국의 제재를 피해 체제를 유지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면서 미국이 먼저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6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이란 경제는 미국의 해상 봉쇄와 제재 여파로 최악의 위기에 몰렸다. 지난 9월 이란 항구에서 원유 적재량은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처음으로 ‘0배럴’을 기록했다.
봉쇄 구역 밖에 쌓아둔 이란산 원유 재고도 지난 7월 1억배럴에서 최근 4500만배럴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산유량은 평시의 절반 수준인 하루 200만배럴까지 떨어져 사실상 내수를 충당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물가도 폭등했다. 지난달 이란의 물가상승률은 연 90%까지 치솟았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아드난 마자레이 선임연구원은 “이란인들은 현금을 손에 넣으면 곧바로 생필품을 산다”며 “그렇지 않으면 돈의 가치가 즉시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의 모흐센 레자이 사무총장도 현재 자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참담한 수준”이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이란 정권이 단기간에 굴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란이 수십년간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며 구축한 비공식 거래망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방향의 육로나 카스피해 수로를 통해 석유를 운송하거나 이란산 원유를 이라크산으로 위장해 거래해왔다. 공해상에서 다른 나라 선박으로 원유를 옮겨 싣는 환적 방식도 활용한다.
인근 국가의 신탁인을 통한 비밀 금융거래도 제재 회피 수단으로 꼽힌다. 미국의 반이란 단체 ‘핵무기 없는 이란을 위한 연대’(UANI)의 찰리 브라운 선임고문은 이란이 달러와 가상화폐 등을 이용해 추적을 피하는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운정보업체 케이플러의 미셸 브루하드 정책·지정학 리스크 담당자는 “이란은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데 탁월하다”며 외부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란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란 정권이 국민의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체제 붕괴로 직결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도 장기전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마자레이 연구원은 “이란 국민의 삶은 더욱 비참해지고 있지만 이란 정권은 국민의 고통을 엄청나게 감내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봉쇄를 유지해야 하는 미국과 관련국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군이 해상 봉쇄와 선박 호위 작전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가운데 중동을 오가는 선박의 보험료와 운항 비용도 급등하고 있다.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하루 운항 비용은 인건비와 보험료 상승 등으로 160만달러까지 뛰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24배 수준이다. 봉쇄가 길어질수록 이란뿐 아니라 원유 수송을 보호해야 하는 미국과 관련국, 글로벌 해운업계가 치러야 할 비용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다.
전쟁 초기 이란이 사실상 장악했던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상당 부분 회복되면서 이란의 협상 지렛대는 약해졌다. 하지만 미국 역시 현재의 고강도 봉쇄를 무기한 유지하기에는 정치·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다는 게 이란의 계산이다.
CNN은 이 같은 구조 때문에 이란 정권이 겉으로 드러난 경제 상황보다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마자레이 연구원은 “오랫동안 전쟁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태에 놓일 것”이라며 “환자의 체온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사망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처럼 이란이 무너지는 기계적인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브루하드 담당자 역시 이란이 아직 체제의 존립을 위협할 ‘인계철선’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