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오른쪽) 대통령과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유력 대권 주자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게티이미지, 파이낸셜타임스, 신동윤 기자 정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3.e7279c68a7d248b58b7f423f4b4aa929_P1.jpg)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하크(hak·권리), 후쿠크(hukuk·법), 아달렛(adalet·정의)!
지난 2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자리한 쉬크리 사라졸루 스타디움에선 ‘이스탄불 더비’로 불리는 튀르키예 프로축구 최대 라이벌 페네르바체와 갈라타사라이 간의 튀르키예컵 8강전 경기를 치렀는데요. 관중석을 가득 채운 홈팀 페네르바체와 원정팀 갈라타사라이 관중들은 경기 시작 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어디든 상관없이 한목소리로 위 구호를 외쳤습니다.
사실 축구와 관련이 없는 이 구호를 홈팀·원정팀 관중이 똑같이 외치게 된 것은 최근 튀르키예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상황과 연관돼 있습니다. 22년째 장기 집권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집권 여당 정의개발당(AKP)에 맞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공통 구호가 바로 ‘권리, 법, 정의’죠.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당국에 의해 체포·구금된 것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지난달 30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시위에 참석한 모습. [AF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rcv.YNA.20250319.PAF20250319159301009_P1.jpg)
지금 튀르키예 전역에선 지난 2013년 ‘불만의 여름’ 이후 12년 만에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유력 대권 주자로서 자신에게 맞설 거의 유일한 정적인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을 공권력으로 전격 체포한 것에 대해 시민들이 저항 중인 것이죠. 이스탄불법원이 ‘법치주의 훼손’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이마모을루 시장을 향후 형사재판 과정에서 계속 가둔다고 결정한 점도 시민들의 저항심에 기름을 끼얹는 상황이고요.
튀르키예의 정치적 불안은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을 듯 보입니다. 시위대에 대해 에르도안 대통령 역시 강경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항의하는 집회·시위가 이어지자 당국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진압에 나서고, 다수의 시민을 체포하며 강하게 대응하는 중입니다.
거리의 테러에 결코 굴복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파괴 행위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공질서 훼손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2월 23일(현지시간) 앙카라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rcv.YNA.20250223.PAF20250223341201009_P1.jpg)
정적 제거에 전격 나선 ‘21세기 술탄’
누구도 쉽사리 예상치 못한 이마모을루 시장의 체포·구금 사태를 두고 주요 외신들과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종신 집권’이란 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에 벌어진 일이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며 초반 11년간은 내각제 총리로서, 후반 11년 동안은 대통령으로 총 22년간 튀르키예 최고 권력자로 군림 중입니다.
지난 2023년 재선에 성공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임기는 2028년까지입니다. 튀르키예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 3선 금지’ 조항에 따르면 이번이 마지막 임기인 셈인데요. 튀르키예에선 에르도안 대통령이 헌법을 개정하거나 조기 대선을 치러 재집권을 노릴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고 권력 연장에 나선 바 있는 데다, 당시 개헌 조항에 중임 대통령도 조기 대선을 실시하면 재출마가 가능하다는 단서까지 달아 자신의 장기 집권을 준비(?)하는 치밀한 모습도 보였었죠. 이제 미래를 위한 포석을 활용해 권력 연장 프로젝트를 가동할 타이밍이 온 것이죠. 임기 내 조기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1954년 2월 생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79세인 2033년까지 임기를 연장하게 됩니다. 사실상 ‘종신 집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의 모습. [AF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rcv.YNA.20250319.PAF20250319168401009_P1.jpg)
이때 에르도안 대통령의 조기 대선 승리란 목적지를 향한 앞길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이마모을루 시장이었던 겁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지난 2019년 3월 지방선거에서 튀르키예 최대 도시 이스탄불 시장 후보로 출마해 집권 여당 AKP 후보를 단 1만6000여표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되며 일약 전국구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습니다. 야당 소속으론 25년 만에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것이었죠. 하지만, 취임 약 한 달 만에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무효’를 선언해 시장직을 박탈당했었는데요. 같은 해 6월 치러진 재선거에선 이마모을루 시장은 2위와 격차를 약 80만표까지 벌리며 낙승하며 시장직에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지난해 3월 지방선거에서 전체 81개 주 가운데 야당 CHP가 35개 지역에서 승리하며 24개 지역에서 승리한 데 그친 여당 AKP를 압도하며 분위기를 잡은 가운데, 이스탄불이란 상징적 공간에서 무난히 재선에 성공한 이마모을루 시장은 자연스럽게 에르도안 대통령의 ‘맞수’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지난 3월 3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튀르키예 국기를 흔들며 시위에 참석한 사람의 모습. [로이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rcv.YNA.20250320.PRU20250320280501009_P1.jpg)
전문가들은 이마모을루 시장을 전격 체포한 것은 정권 연장을 위해 조만간 치러야 할 조기 대선에서 만나게 될 강적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 평가합니다. 최근 각종 선거에서 승리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는 이마모을루 시장의 존재가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자신의 맞상대가 되는 것에 대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담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단 것이죠.
당장 지난 2023년 대선 때 에르도안 대통령은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CHP 후보에 신승하며 재선에 실패할 뻔했었는데요. 앞으로 치러질 선거에선 리스크를 사전에 제거해야겠단 판단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죠.
현재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을 고려한다면 대선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단 분석도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실제로 미국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의 세계 주요국 지도자 지지율 조사(2025년 2월 27일~3월 5일 조사)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율은 33%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률 57%에 비해 24%포인트나 낮았습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의 세계 주요국 지도자 지지율 조사(2025년 2월 27일~3월 5일 조사) 결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모닝컨설트 홈페이지 캡처]](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3.646fc62c5f3f4e46a20a06a09b758a51_P1.jpg)
40세 이상 공직 출마 자격이 있는 고등교육 이수자(대졸 이상)가 대통령 출마 자격이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체포 하루 전인 18일(현지시간) 이스탄불대학교가 이마모을루 시장의 학사 학위를 무효로 하는 조처를 한 것에도 주목합니다. 체포·구금을 넘어 정적을 ‘고졸’로 만들어 대선에 도전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중 족쇄’를 채운 것이죠.
튀르키예 정국 혼란 장기 국면으로
튀르키예의 정치적 혼란은 단기간에 끝나기 힘든 상황으로 빠져드는 분위기인데요.
이마모을루 시장의 정치적 근거지이자 최대 도시 이스탄불을 비롯해 튀르키예 전역에선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튀르키예에선 대통령 후보들이 감옥에 갇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 청년 수백, 수천 명을 잡아 가두는 정부가 원하는 것은 위협하고 두려움을 심어줘 다시는 거리로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외즈귀르 외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대표가 지난 3월 29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개최한 반(反) 정부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rcv.YNA.20250329.PAF20250329275001009_P1.jpg)
CHP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예비 경선을 통해 투옥된 이마모을루 시장을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선후보로 선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엔 CHP 등록 당원 170만명 이외에도 비당원 시민 1321만명 등 약 1500만명이 참여했는데요. CHP는 이마모을루 시장에 대한 시민 연대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강경함 그 자체입니다.
이마모을루 시장이 체포된 지난달 19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튀르키예 당국은 약 1900명의 시위대를 구금했고요. 검찰은 체포된 인원 중 74명에게 최대 3년의 징역형을 구형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 23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 당국에 의해 체포·구금된 것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액을 뿌리며 진압에 나서고 있다. [A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rcv.YNA.20250326.PAP20250326187301009_P1.jpg)
튀르키예 야권은 여권과 관련된 기업들을 겨냥한 불매운동에도 나서는 등 장기적 투쟁으로 나아가는 모습도 보이고 있는데요.
앞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집회에서 외즈귀르 외젤 CHP 대표는 NTV 방송사와 그 모회사인 도우쉬 그룹을 보이콧 대상으로 지목했습니다. NTV가 친정부 논조로 보도하면서 야권이 주도하는 반정부 집회를 충실히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죠.
외젤 대표는 NTV를 시청하지 않고, NTV에 광고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외쳤는데요. 도우쉬 그룹이 운영하는 누스렛, 규나이든, 에스프레소랩, D&R 등 각종 매장을 방문하지 말자고도 했습니다. CHP를 지지하는 대학생들은 2일(현지시간) 하루 모든 소비활동을 멈출 것을 제안하기도 했죠.
정부 당국도 그대로 두고 보지만은 않는 분위기인데요.
‘언론의 자유’을 역설했던 사람들의 위선을 보십시오. 채널을 위협하는 사람들이 언론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에부베키르 샤힌 라디오·TV최고위원회(RTUK) 위원장. [스푸트니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3.a300bf2f1f5247a4a8ea24543fdf46e5_P1.jpeg)
이스탄불검찰청은 언론과 소셜미디어(SNS)로 불매운동을 촉구한 일부가 증오·차별적 언행을 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선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 성립 후 지켜온 ‘세속주의’ 전통을 대표하는 제1야당 CHP와 강경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주창하며 소수민족과 타 종교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최근 강화하고 있는 집권 여당 AKP 간의 대결 구도가 내재한 점도 갈등 장기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내놓습니다.
CHP는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영웅으로서 ‘국부(國父)’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지난 1920년 창설한 정당입니다. 튀르키예에선 세속주의의 보루로 불리는데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시위대가 아타튀르크의 얼굴이 인쇄된 펼침막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죠.
![지난 3월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여성이 튀르키예 건국 영웅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얼굴이 그려진 튀르키예 깃발을 흔들고 있다. [AF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rcv.YNA.20250329.PAF20250329243901009_P1.jpg)
정치가 망친 경제
지금까지 설명한 튀르키예의 정치적 급변 사태가 벌어지게 된 ‘트리거(방아쇠)’인 이마모을루 시장에 대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격 체포·구금의 후과는 사실 경제, 금융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이마모을루 시장이 전격 체포된 지난달 19일(현지시간) 하루에만 튀르키예 증시 보르사이스탄물(BIST) 100 지수는 8.72% 폭락했습니다. 시장 충격이 커지면서 개장 직후엔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인베스팅닷컴]](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3.a165dce785344cb59d75ad68b1c4b2ad_P1.jpg)
이틀 뒤 3월 21일(현지시간)에도 BIST 100 지수는 또 한 번 7.81% 급락세를 보였고요. 이 사건이 벌어졌던 3월 셋째 주(17~21일) BIST 100 지수의 등락률은 무려 -16.57%에 달했습니다. 이는 지난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튀르키예 증시에서 발생한 최악의 기록이라고 하네요.
이스탄불 증권거래소 상장사의 총 시가총액 중 약 666억달러가 정치적 사태 발생 한 주 만에 증발했다고 합니다.
국채 시장도 요동쳤는데요.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이마모을루 시장 체포 전 26%대를 기록 중이던 튀르키예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3월 19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28.72%로 급등했고요, 이틀 뒤엔 30.94%로 30% 선을 넘기도 했습니다. 장중 최고치는 지난달 24일(31.54%) 기록했고요, 장 종료 시점 최고치는 지난달 28일 찍은 31.21%입니다. 연중 최고치 기록을 계속 경신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또 하나 눈여겨 지켜볼 지표가 바로 환율입니다. 튀르키예 리라화 가치가 대내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급락했던 것인데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1달러당 36.50리라였던 게 단숨에 41.64리라까지 치솟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달러/리라 환율이 40리라 선을 넘어선 것은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1달러당 튀르키예 리라화 환율. [인베스팅닷컴]](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3.1dc2f9fbee554bbab4e11eea3b5893c6_P1.jpg)
튀르키예 금융 시장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불안정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다급해진 튀르키예 정부로서도 국가 역량을 금융 시장 안정에 투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단 평가가 나오는데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야권 탄압이 촉발한 정치 위기로 발생한 리라화 폭락 사태를 방어하기 위해 국고 120억달러(약 17조5008억원)가 소진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마모을루 시장 체포 당일(3월 19일)에만 115억달러(약 16조7716억원)가 리라 방어에 투입됐다고 하는데요. 이는 튀르키예 중앙은행의 역대 외환시장 개입 최고액의 4배 수준이라고도 합니다.
튀르키예 금융당국은 리라 예금자들의 달러 환전을 방지하기 위해 은행 간 익일물 금리를 인상하는 등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다른 조치도 병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죠.
다시 정치가 경제보다 우선시됐습니다.
뒤통수 제대로 맞은 外人 투자자
종신집권의 꿈을 하루빨리 현실화하고팠던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승부수는 당장 경제에 생채기를 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란 게 더 큰 문제란 비판이 나오는데요. 외국인 투자가 경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국가지만, 이번 정치적 급변 사태를 대통령이 자초하면서 신뢰도에 돌이킬 수 없는 흉터가 남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 최근 튀르키예 주식시장과 국채는 지난해 급등세로 ‘고밸류에이션’ 상황에 놓인 미국을 대신해 높은 수익률을 거둘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EM) 시장 중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 중 한 곳으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메릴린치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메흐메트 심셰크 재무장관의 지휘 아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싸우기 위해 기준금리를 숨 가쁘게 인상하며 뼈를 깎는 고통을 인내한 효과가 서서히 발휘 중이란 평가가 많았던 상황이었고요.
![메흐메트 심셰크 튀르키예 재무장관. [로이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3.f49abfb1751344298ad3c29b68417f17_P1.jpg)
연이율 40%가 넘는 높은 이자율이 채권시장으로 투자자들을 다시 끌어들였고요. 리라화 가치 안정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저평가’ 상태에 놓였던 튀르키예 주식 매수에 적극 뛰어들었습니다. 지난 2023년 이후 외국인 투자자는 약 300억달러어치의 튀르키예 주식과 채권을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0개월 만에 처음으로 40% 미만으로 떨어진 39%를 기록한 것도 투자자에겐 튀르키예 경제가 다시 정상화로 가고 있다는 믿음에 힘을 실었었죠. 연말이면 20%대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기대할 만하단 분석도 이어졌고요.
최근 1년간 튀르키예 국채는 18.5% 수익률을 내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고, 신흥국 평균(4.7%)의 네 배에 달하는 수준을 보였습니다. 최근 2년간 BIST 100 지수도 2배 가까이 올랐고요.
안도하고 있던 만큼, 투자자들이 얻어맞은 ‘뒤통수’의 통증은 어느 때보다 더 세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상황입니다.
야당 대선 후보를 정부 공권력을 동원해 제거해 선거를 무력화하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시도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 등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죠.
튀르키예는 이제 완전한 독재국가가 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로이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rcv.YNA.20241120.PRU20241120104601009_P1.jpg)
튀르키예 정부의 적극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리라화 가치 하락은 피하기 힘들 것이란 비관적 전망에 힘이 실리는데요. 에브린 볼귄 튀르키예 베이코즈대 교수는 “튀르키예에선 환율이 10% 상승하면 연말 인플레이션이 약 5%포인트 추가된다”면서 “환율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에 맞서는 프로그램이 의미를 잃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지난 2년간 인플레이션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얻어낸 성과가 한 번의 정치적 급변 사태로 휩쓸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튀르키예 금융투자시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엑소더스(대탈출)’는 어쩌면 당연한 후과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것은 또 리라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수입 물가 급등으로 연결돼 인플레이션 심화로 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됨을 의미합니다.
미국 투자은행(IB) JP모건도 튀르키예의 올해 말 물가상승률 예측치를 27.2%에서 29.5%로 재차 높여 잡기도 했습니다.
“튀르키예 불안, 글로벌 신흥 시장 금융 불안 전이 가능성”
튀르키예 경제가 흔들리는 게 사실 국내 투자자에겐 먼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는데요. 글로벌 투자 자금의 흐름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충격파란 점에서 국내 금융투자시장에도 상당한 파장이 미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특히, 튀르키예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분류상 한국과 함께 신흥국에 묶여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 운용 과정에서 상호 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입니다.
튀르키예 정치 불안의 심화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는 효과를 보일 수 있단 분석이 나오는데요. 제인 폴리 라보뱅크 외환전략책임자는 “튀르키예 사태가 주요 10개국(G10) 통화 시장과 전반적인 위험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AP]](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rcv.YNA.20250326.PAP20250326186601009_P1.jpg)
튀르키예의 금융 불안이 신흥 시장 통화 불안으로 번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 상황이고요.
한국 금융당국도 튀르키예 사태를 예의 주시하는 상황입니다. 지난달 20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등 일부 신흥국 시장의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주식, 채권, 단기자금 등 시장 전반의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습니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일부 튀르키예에서 빠져나온 신흥국 채권·주식 펀드 자금이 한국·베트남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신흥국으로 자금이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내놓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위험자산 회피 모드 확산의 영향이 더 클 것이며, 리라화 폭락이 신흥국 통화 전반에 리스크를 확산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튀르키예가 지닌 고유의 지정학적 가치를 고려할 때,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함으로써 경제까지 악영향을 받는 것이 불러올 리스크에도 투자자들이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는데요.
무엇보다 튀르키예가 불안해질 경우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른 갈등과 불안도를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바로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천연가스·식량이란 필수적 요소가 반드시 지날 수밖에 없는 통로란 점 때문입니다.
![[BOTAS]](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3.205b3c95a6c2422185ed75ca75241da9_P1.jpg)
코트라에 따르면 튀르키예 역시도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의 98.6%를 수입하는 가스 소비국인데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에너지 유통 허브’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에 대한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된 이후 아제르바이잔과 연결된 ‘아제르바이잔-튀르키예 파이프라인(TANAP)’ 운송 용적을 2배 늘리며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주요 통로로서 역할 중이죠.
코트라는 “흑해 연안과 동지중해 등의 잠재적 자원이 개발될 경우 유럽으로 수출을 진행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평가했고요.
![보스포러스 해협으로 선박이 운항하는 모습. [로이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rcv.YNA.20250115.PRU20250115038601009_P1.jpg)
연간 3000만t 이상의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해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불안으로 인해 글로벌 밀, 옥수수, 해바라기씨유 공급 등에 차질을 빚을 경우 식량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전 세계 주요국을 직격할 수 있다는 것이죠.
최근 미국 등을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는 ‘S(Stagflaion·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 공포’를 가중할 잠재적 리스크가 될 수 있죠.
이 밖에도 반도체, 배터리, 항공우주, 유리 산업 등에 필수적인 붕소의 글로벌 공급량 70%를 튀르키예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