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세 쇼핑몰·블로그 마켓 등 패션 브랜드화
대중 아닌 소수 인원 취향 공유, 매력 증폭
패션업계, 편집숍서 다양한 브랜드 창구 역할
“니트는 보헴서(보헤미안서울), 바지는 트리밍버드에서 샀어요. 둘 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입니다. 옷 디자인이 힙하면서 흔하지 않거든요. 오늘은 세일하는 보헴서 제품 사러 왔습니다.”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보헤미안서울. 입장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이들로 매장 앞 계단이 북적였다. 내부로 들어서자 매장을 꽉 채운 옷가지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복슬복슬한 가디건부터 허리부터 잘록해지는 핏의 가죽 자켓,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멍 난 티셔츠까지 조금은 ‘특이한’ 디자인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은 대부분 20·30대 여성이었다. 매장을 찾은 임하은(24) 씨는 “온라인에서 어떤 옷을 살 지 결정한 뒤 매장에 방문했다”며 “직접 입어보지 않았지만, 입고 싶은 디자인이라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보헤미안서울은 명품도, 유명 브랜드도 아닌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작은 브랜드다. 처음에는 동대문 의류 도매시장에서 옷을 사입해 판매하는 보세 온라인 쇼핑몰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의 패션 브랜드로서 성장 중이다. 한남동 골목길 안 건물 3층에 자리 잡은 작은 매장으로 수많은 고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보세 쇼핑몰, 블로그 마켓 등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브랜드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헤미안서울을 비롯해 쓰리타임즈, 트리밍버드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직접 의류를 디자인하면서 아예 디자이너 브랜드로 전환하는 경우도 흔하다. 브랜드로 전환한 쇼핑몰은 무신사, W컨셉 등 패션 플랫폼에 입점하며 판매 영역을 넓히기도 한다.
평범한 보세 쇼핑몰이 브랜드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팬심’이다. 스몰 브랜드는 오픈런과 웨이팅을 부를 만큼 팬덤이 탄탄하다. 팬심의 대상은 브랜드 대표부터 제품의 디자인, 로고 등 다양하다.
많은 사람과 취향을 공유하는 것을 꺼린다는 점이 특징이다. 비교적 떨어지는 대중성이 오히려 브랜드의 매력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소수의 인원이 진한 취향을 공유하는 만큼 브랜드에 대한 애착도 크다. 자신을 ‘버디(트리밍버드 팬덤)’라고 소개한 김예원(23) 씨는 “예전부터 트리밍버드만의 코디와 감성을 좋아해 계속 구매했다”며 “점점 브랜드가 유명해지는 것 같아 좋으면서도 아쉬운 기분이 든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옷 디자인이 튀다 보니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치면 조금 민망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스몰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쇼룸 투어’도 하나의 문화가 됐다. 하루 날을 잡고 다양한 브랜드 쇼룸을 돌아보며 쇼핑하는 쇼룸 투어는 한남동과 성수동 일대 등에서는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한남동에는 보헤미안서울·글로니·시엔느 등이, 성수동에는 마뗑킴·이미스 등이 밀집해 있다.
업계는 편집숍 형태로 다양한 브랜드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초기 편집숍은 명품 위주로 운영됐으나 최근에는 신진 디자이너 등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는 역할도 한다. 대표적으로 삼성물산은 43개의 편집숍 비이커(Beaker)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3곳의 플래그십 매장이 자리 잡은 곳도 쇼룸 투어의 성지인 한남동, 성수동, 청담동이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소비 취향이 고도화하면서 소품종 다량생산이 아닌 ‘니즈 파편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면서 “특정 브랜드를 아는 사람이 알아봐 줄 때 만족감이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편집숍은 다양한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시장성을 판단할 수 있는 테스트 마켓이 되기도 한다”며 “잠재력 있는 브랜드 위주로 매장을 운영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새날·김희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