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지난해 경기 둔화 속에 금리가 오르면서 빚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이르는 기업이 급증했다. 올해도 녹록지 않은 환경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용등급이 낮고 차입이 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맞는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지난해 12월 글로벌 기업 20곳이 디폴트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4개에서 급증한 숫자로, 연간 디폴트 기업은 159개로 늘어났다.
글로벌 12개월 후행 기업 부도율은 4.8%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여파로 기업들이 파산한 2021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무디스는 “높은 자금 조달 비용과 더 타이트해진 자금 조달 여건이 2023년 기업 디폴트 증가를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12월 디폴트의 절반 이상은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었지만, 8곳은 유럽에서 나왔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과 제재 관련한 디폴트를 제외하면 15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에서 최다 기록이다.
이같은 디폴트 급증은 미국 금리가 2년 전 제로에 가까운 수준에서 지난해 5% 이상으로 상승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저신용 대출 기업들이 여전히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보여준다고 FT는 전했다.
올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투자자문사 리먼 리비안 프리드슨의 마티 프리드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시장은 특히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주의가 요구된다”며 “경제에는 안일함이 위험한 입장이 될 수 있는 분야들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종은 비즈니스 서비스와 헬스케어로 각각 15개, 13개 기업이 디폴트에 빠졌다.
미국 의료 구급차 기업 에어메소드와 개인 대출 플랫폼 렌딩트리, 영화 광고회사 스크린비전, 영화관 체인 AMC엔터테인먼트, 독일 케이블 기업 텔레콜럼버스 등이 지난해 12월 부도를 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레이팅스도 전날 보고서에서 지난해 디폴트 기업이 153개로 전년(85개)보다 80% 증가했다고 밝혔다.
무디스는 “주요국의 금리 인하 속도는 금리 인상 속도보다 완만해 금리가 더 오랫동안 높게(higher for longer) 유지될 것”이라며 올해 디폴트 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 디폴트 비율은 1분기 4.9%로 정점을 찍은 후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팬데믹 당시보다 더 완만하고 점진적으로 감소해 연말까지 3.7% 수준에 도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단 심각하게 비관적인 상황에선 디폴트 비율이 11.5%에 이를 수 있다고 무디스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