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훼손 등 미묘한 대립 구도

유학 홍콩학생들 “中, 민주주의 몰라”

중국 학생들 “대자보 훼손은 음해”

경찰도 긴장 모드…대응체계 가동

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한국 대학가로 시위 여파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홍콩 시위 지지 의사를 밝히자,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들의 반발이 불에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 되고 있다. 시작은 대학 내 대자보 훼손에서 촉발됐지만, 한중 갈등 양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키는 어렵다. 경찰도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대응 체계 가동에 나섰다.

▶홍콩 시위 지지측 “中, 민주주의 몰라”=14일 한국외대에서 만난 홍콩 유학생 임하나(24·한국외대 어학원 2년째 재학) 씨는 “공산권 국가에서 유학을 온 중국 학생들은 민주주의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홍콩을 도와달라는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주장을 담은 대자보를 훼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 뿐만 아니라 대만이나 호주·캐나다 등 해외 대학에서도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가 붙고 있는데, 뉴스나 지인 등에 따르면 이들 대학에서도 중국학생들이 찾아와 대자보를 훼손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 유력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다 현재는 서강대학교 어학원에 수학중인 나오미(27) 씨는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홍콩인들이 현지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다. 한국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도 민주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면서 “중국 학생들이 민주 시위를 ‘독립’을 위한 폭동으로 생각하고, 한국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쉽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 학생들이 홍콩에 대한 지지 목소리를 내주는 데 감사한다”면서 “1987년 민주항쟁으로 시작된 한국의 대학문화가 이번 홍콩 민주화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한국에서 유학중인 중국 학생들은 한국 대학 내 홍콩 지지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중국학생과 함께 ‘홍콩시위 반대 활동’을 진행중인 R(익명 요구·고려대 4학년) 씨는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는 중국학생들에 의한 대자보 훼손은 발생하고 있지 않다. 최근 대자보를 훼손하고 있는 것은 한국과 중국 학생들을 음해하려는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이라며 “홍콩의 문제는 일국양제 체제를 갖춘 중국의 내부 문제다. 한중 학생 간 갈등이 생겨야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R 씨는 홍콩시위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선 “무언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선 평화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면서 “지금의 홍콩 시위는 폭력성이 지나치게 높아져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외대 게시판이 마련된 학생회관 매점 관계자는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오전 11시께, 저녁시간이 시작되는 오후 4시 30분께 학생들이 모여서 훼손된 대자보를 교체하고 회의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면서 “한중 학생 간 대립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라고 했다.

한양대학교에서는 한국과 중국 학생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다. 지난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교내에서는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회원 10여명이 홍콩 시위 지지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고, 중국학생들이 이에 대해 항의하며 양측 간 몸싸움이 발생하기도 했다.

▶ 경찰도 사태 추이에 촉각= 홍콩 시위 찬반 문제가 사회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 경찰측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중국 대사관·공관·중국 관련 시설들에 대해 위험성이 없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위관계자 역시 “홍콩사태와 관련, 특별한 동향이 있으면 신속하게 조치를 내려야한다는 지시를 일선 서에 내렸다”며 “홍콩사태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등과 관련해서 외국 정부 인사들이 들어오는데, 이에 대해서도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경찰청 경비국 대테러과는 외교부와 함께 14일부터 20일까지 전국에 있는 대사관, 공관 등에 대한 위험도 평가에 들어갔다. 위험도 평가이후 필요성이 인정되면 경찰인력이 추가로 배치된다. 지난달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회원들이 미국 대사관의 담을 넘은 이후 미국과 일본 대사관의 경비 인력은 추가로 배치된바 있다.

박병국·김성우 기자/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