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허연회ㆍ하남현ㆍ안상미 기자]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기존 참여국과 예비 양자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그동안 TPP에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던 정부가 예상보다 일찍 관심 표명을 한 것은 최근 TPP 협상 진척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금이 협상에 들어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4월 일본의 TPP 협상 참여가 최종 승인된 뒤 정부 내부에서 “이제는 TPP 협상 참여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최대 경쟁상대인 일본의 협상 참여가 그만큼 우리 정부를 다급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현오석 경제 부총리는 지난 29일 오후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TPP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협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참여 조건에 대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가 먼저 TPP 참여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기존 참

여국과 예비 양자 협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 부총리는 또 “정부는 TPP 참여에 따른 농축수산업 등 민감 분야를 포함해 분야별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해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현 부총리의 발언이 ‘참여 확정’이 아닌 ‘관심 표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TPP(Trans-Pacific Partnership) 협상에는 미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멕시코·페루·칠레·싱가포르·브루나이·베트남·말레이시아·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FTA와 TPP ‘투트랙’으로=향후 우리나라 통상정책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중심에서 벗어나 TPP까지 동시에 추구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쳐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정부는 미국 등의 직간접적인 TPP 참여 요구에도 ‘관망’ 기조를 유지해 왔지만 이미 발효된 미국·유럽연합(EU)·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과 맺은 FTA를 안착시키는 게 급선무인데다 TPP의 손익이 불명확해 주저해왔던 게 현실이다.

여기에 한·중 FTA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TPP에서 거리를 두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통상정책자들도 TPP보다는 한·중, 한·중·일 FTA가 우선이라는 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정부가 TPP 협상 참여국인 호주·뉴질랜드·캐나다와 한동안 중단된 FTA 협상을 재개한 것도 TPP 협상에 ‘경착륙’하기 위한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TPP 참여로 농수축산업은 타격 불가피=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할 경우 국내 농축수산업 분야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 일본 등 12개 TPP 참여국과 우리나라의 농축수산 분야 교역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모두 194억 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수출은 총 38억9000만 달러, 수입은 155억 달러로 농축수산 분야의 무역수지는 116억1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전품목 관세 철폐와 예외품목 사전금지 등 높은 수준의 개방을 전제로 한 TPP에 참여하면 농축수산 분야의 적자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욱이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등 아직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와 교역액이 전체의 43.5%(84억3000만 달러)를 차지하고 있어 무역수지 악화를 심화할 공산도 크다.

특히 호주산 쇠고기 등 축산물과 밀·옥수수·콩 등 곡물류의 수입이 증가해 축산 농가와 밭작물 재배 농가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있다.

이미 FTA를 체결한 국가도 TPP 논의 과정에서 추가 개방을 요구할 수 있다.

FTA를 체결한 미국이 TPP 가입 조건으로 쇠고기 시장 추가 개방, 쌀 관세화 이후 관세 인하 등을 요구할 수 있고,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칠레 등이 농수산물 전면 개방을 압박해 올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민단체도 TPP 참여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는 TPP 참여에 반대 성명을 내고 “TPP에 가입하면 농업의 막대한 피해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TPP 협상에 농업계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TPP 참여로 석유화학, 철강, 섬유업계 반색=우리나라 무역의 67%가 중간재인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을 주축으로 한 TPP 네트워크에서 빠지게 되면 생산비용, 관세 등에서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당연히 TPP 참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TPP 참여로 화학·전기전자·일반기계 등에서 적자를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대한민국 전체 수출을 보면 이익이 크다.

문제는 수출대국 일본이 대한민국 안방을 손쉽게 접수할 수도 있다.

일본산 자동차가 무(無) 관세로 국내시장에 들어와 국내 완성차 업체들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석유화학, 철강, 섬유업계 등은 반기는 분위기이다.

특히 우리나라 원사를 베트남 등으로 가져가 제품을 만든 뒤 미국 등지에서 판매하는 섬유업계는 제일 많은 혜택을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TPP 관심표명…너무 늦은 것 아닌가=우리 정부가 뒤늦게 TPP 협상 참가에 관심을 나타냈으나 이미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TPP 협상을 주도하는 미국 정부도 새 참가국의 합류는 기존 12개 회원국의 협상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가능하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2일 워싱턴DC 외교·경제 소식통에 따르면 마이클 프로먼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우리나라의 TPP 참여 의사 표명을 공식적으로는 환영하며 “한국은 (환태평양)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의 TPP에 대한 관심은 이 지역에서 이 협정이 갖는 중요성이 상당히 크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협상 참여 시점에 대해 한국 정부가 원하면 언제라도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프로먼 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TPP 지도자들과 각국 전담팀은 현재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어느 국가라도 협상에 새로 합류하려면 현 TPP 협상국과의 양자 협의를 마무리해야 하고 이들 국가는 또 (의회 동의 등)적절한 국내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전제했다.

자칫 중간에 협상에 참여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가 협상에서 배제돼 우리 입장을 거의 반영하지 못한 채 다른 회원국들의 합의 결과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