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외교가 선거용으로 남용돼서는 안된다

우리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수백명의 외교관도 못할 일을 한다”고 말하곤 한다. 여기서 ‘외교관이 하는 일’이란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세계에 심는 민간외교를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민간외교도 중요하다. 그러나 외교는 대외적으로 국가의 주권을 행사하는 공적인 행위다. 국가의 평등한 권리와 이익의 명분을 확보하는 활동이다. 주권은 국가의 독립적인 통치권능이다. 주권은 외국이 간섭할 수 없고 분할할 수도 없다. 그래서 어떤 국가체제든 국가공무원과 위임받은 자만이 공적인 외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1799년 제정한 ‘로간법’에 따라 국가로부터 위임받지 않은 자가 외교 교섭을 행하면 중범죄(felony)로 처벌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은 대통령 취임 전 러시아와 외교 거래를 한 혐의로 로간법에 따라 기소됐다.

외교는 또한 안보적 위험을 예방하는 억지력이다. 전쟁은 곧 외교 실패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려는 외교를 하다 러시아의 침략을 당한 우크라이나가 실사례다. 전쟁은 예견할 수 없고 억지력은 실험할 수 없다. 억지력 강화를 위해 일종의 안보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곧 동맹이다. 보험료는 꼬박꼬박 내고도 실제 보험 혜택은 안 받는 것이 최선이다. 동맹도 비용은 들지만 실제로 발동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전쟁의 피해는 예방비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미동맹은 역사상 가장 효과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안보동맹이다.

외교의 성패는 늘 불분명하고 모호하다. 외교의 실패는 당장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성공적으로 포장하기도 쉽다. 성공한 외교도 너무 과시하면 상대에게 되치기당할 수 있다. 외교의 성패는 한참 뒤에야 현실로 나타난다. 그래서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언제나 ‘성공적’이라고 홍보할 수 있고 대통령은 자신이 외교를 잘 한다고 착각하고 자만하게 된다. 외교를 정치에 이용하고 싶은 유혹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외교통찰력은 자신의 정치권력이 아니라 외교전문가들의 조언을 경청하고 판단하는 자세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신냉전 시대에 경제안보, 첨단과학기술안보, 인공지능(AI) 관리, 환경 등 안보 개념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지식을 종합하는 능력이 곧 통찰력이다. 외교참모들은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국민들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언론에 수시로 잘 설명해야 한다. 수학시험에서 정답만 달랑 쓰고 풀이과정을 설명하지 않으면 대폭 감점 당한다. 작년 3월 강제징용배상의 3자 변제 방침 발표와 한일관계 개선이 그랬다. 그것은 정답이었지만 감점은 계속되고 있다.

총선이 다가온다. 대통령이 외교를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남용하는 것은 국가이익을 손상시키는 행위다. 정치인이 선거 유세 목적으로 정부의 외교를 폄하하고 외교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정치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미리 공지하는 것이다. 외교에 관해 국내여론이 양분되면 북한이나 주변 강대국들에게 반드시 이용당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대통령선거에서 외교안보 분야에 관한 토론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합된 국력이 곧 외교의 기반이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