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같은 위험을 보유한 사람들이 위험공동체를 형성하여 보험료를 납부하고 보험사고가 발생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역사적으로 환난에 십시일반으로 서로를 돕는 지방단위의 자치규약인 향약이 위험공동체를 구성하는 역할을 했었고, 현대 사회에서는 구매의 강제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 국가나 보험회사가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위험공동체를 구성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보험상품을 구매한 사람은 죽거나 오래 살거나, 병에 걸리거나 다치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주는 등의 보험사고로 인하여 자신이나 가족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경제적 손실에 대비하게 된다.
위험공동체를 형성하는 보험의 특성상, 위험공동체에 들어오는 소비자가 사전에 자신의 위험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지 않거나, 구성원 중에 위험관리가 느슨한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보험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보험에 관한 논의에서 소비자의 사전 고지의무나 도덕적 해이 및 역선택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소비자 보호에 대한 논의를 위험공동체의 유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험소비자는 자신이 가진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보험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험시장에서 소비자 보호는 소비자가 위험공동체에 떠넘긴 위험이 다시 소비자 개인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위험공동체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에 많은 나라에서는 보험회사가 부실해지면, 최후의 수단으로 위험공동체 관리자인 보험회사를 바꾸는 계약이전을 통해 위험공동체를 유지하는 방식이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행 예금보험제도가 부실 보험회사 처리와 관련하여 보호 대상인 모든 보험 종목에 대하여 위험공동체 해산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점은 유감이다. 소비자가 시장에서 동일 조건의 대체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경우 위험공동체를 해산한 사례는 있다고 하지만, 부실한 회사를 정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위험공동체를 해산하는 방식으로 보험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현행 예금보험제도의 접근은 보험의 원리와 맞지 않는다. 예금소비자와 보험소비자를 모두 보호 대상으로 삼고 있어도 예금과 보험의 특성에 맞게 보호제도를 달리 운영하는 해외 사례에 비추어도 국내 예금보험제도는 더 유연하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
반면, 보험회사에 위험을 전가하는 정도가 미미한 소비자들이 위험공동체에 잔류할 유인은 낮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보험시장의 대다수 소비자가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예금소비자와 보험소비자 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이들을 다르게 보호할 이유도 크지 않게 된다. 그러나 지금 보험시장은 다르다.
따라서 보험소비자 보호는 위험공동체 유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위험공동체를 탈퇴하는 소비자에 대한 높은 페널티가 환급금 보장보다 우선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위험 전가가 미미하여 위험공동체 유지와는 거리가 먼데도 보험이라는 이유로 높은 수수료와 낮은 수익률을 소비자가 감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불확실한 미래 지출 또는 손실에 대비하는 수단에는 보험 이외에도 예금 등 다양한 투자수단이 있기에, 위험 전가가 미미한 보험은 다른 금융상품과 시장에서 동등하게 경쟁하여 소비자가 선택하게 해야 한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 금융제도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