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싸진 사과와 과일값이 연일 주요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작년 사과꽃이 필 무렵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지속되면서 수확량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꽃눈 피해와 더불어 수분 불량, 여름철 기록적인 강우와 일조량 부족으로 수량은 물론 상품성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과일값 파동은 기후변화와 이상기상으로 우리가 앞으로 일상에서 겪게 될 문제 중 사례일 뿐이라 생각한다. 근래 겨울이 따뜻한 난동(暖冬)현상과 식물의 종류나 지역 구분 없이 한꺼번에 꽃이 피는 동시개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가 심상치 않다. 일찍 활동을 시작한 화분 매개 벌들이 봄철 급격한 온도변화나 밀원식물의 부족으로 피해를 입는 일도 자주 발생하는데, 가속화된 기후변화로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이 고유한 생활사 유지에 혼란을 겪는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생물들의 반응이나 생활사에 미치는 영향을 ‘생물계절(phenology)’이라 한다. 온대지역 식물은 대부분 봄에 꽃이 피어 가을까지 결실하며 겨울 동안 휴면의 과정을 반복하며 생장하는데 생물계절의 규칙성은 정상적인 생태계 유지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1차 생산자인 식물에 의존해 생존하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에게는 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로 점점 뜨거워지는 기후에 단순히 적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기 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 방안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한 때가 된 것이다.
작년 미국의 제15회 ‘국가기후평가(National Climate Assessment)’에서는 따뜻해진 겨울과 봄철 고온현상에 따른 생물계절의 변화를 핵심 의제로 다룬 바 있다.
특히, 작물의 잎과 꽃이 피는 시기, 산란 등 농업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해서 다룬 것은 물론 철새이동이나 화분매개곤충과 밀원수, 병원 매개체, 산불 등 우리 삶과 직결한 여러 분석결과를 정책에 참고하도록 제시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주관했던 미국의 ‘국가생물계절네트워크(NPN, National Phenology Network)’는 기후변화로 인해 일어나는 생물계절의 변화를 실측을 기반으로 예측하고 대응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만든 기구인데 EU나 일본 등도 유사한 논의와 연구를 미국 못지않게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기후변화 예측이나 온실가스 감축 이외에도 생물계절 변화와 대응방식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와 실질적인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분야 중 하나인 농업생산 분야는 나라마다 생산환경과 재배 품목이 달라 세부 대응방안의 공유가 어려울 수 있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근래 농촌진흥청에서 기후온난화 시나리오에 맞춰 과수 재배 북한계선과 적지를 선정하고 관련 기술들을 제공하는 것과 철원에 북부원예출장소를 설립해 관련 연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눈여겨볼 만하다.
정부가 역점 추진하는 노지 스마트팜 확산 정책도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는 함의가 크다. 다만, 생물계절의 변화에 맞춘 농업생산 구조를 단기간에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관련 R&D의 확대는 물론 부처간 협업을 통한 혁신적 대응방안 마련과 실천이 더 시급하고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서효원 농촌진흥청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