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석희 기자] 영국 파운드 가치는 올 들어서만 3% 떨어졌다. 주요국 통화중 가장 하락폭이 크다.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EU탈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감이 반영된 탓이다. 1993년 닻을 올린 범유럽 국가 유럽연합(EU)이 흔들리고 있다. 단순히 영국의 탈퇴로 끝나는 얘기가 아니다. 브렉시트 현실화는 덴마크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높다. 사상최고의 실업률에 끝없이 몰려드는 난민문제로 가뜩이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EU내 다른 국가들로 도미노 현상이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국의 브렉시트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불을 지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에 이어 덴마크…도미노 브렉시트=영국이 EU와의 이별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잔류할 것이냐는 오는 6월 국민투표에서 결정된다. 영국내 여론도 잔류와 이별 사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영국이 이미 사실상 EU와 결별했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총리가 지난 19일(현지시간) 24시간의 마라톤 회의 후 “영국은 절대 유로존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유럽 슈퍼 국가의 일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특별한 지위가 부여됐다”고 말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게다가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 등 캐머런 총리의 우군들마저 등을 지고 공개적으로 브렉시트 지지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영국의 EU 잔류 가능성이 67%에 달하지만, 시장이 의구심을 품고 영국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적 불협화음으로 언제든 국민 여론이 브렉시트 지지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브렉시트가 단순히 영국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의 EU 탈퇴는 덴마크 등 EU 체제에 회의적인 국가들의 도미노 탈퇴로 이어질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이와 관련 “EU 경제권에서 두번째로 큰 영국의 탈퇴는 가뜩이나 취약해진 유럽에 대한 재앙이 될 것이다”고 진단했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선 EU 탈퇴 이후 도미노 처럼 EU 탈퇴가 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WSJ도 22일 EU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덴마크가 다음 타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덴마크는 이미 지난 12월 국민투표에서 EU의 사법체계안에 들어가는 안을 부결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덴마크는 아직까지 자국 통화를 사용하는 등 EU와 거리를 두고 있는 상태다.
이와 함께 지난 2014년 주민투표로 부결된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스코틀랜드의 영국 독립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를 이끄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당수 니컬러 스터전은 “영국 내 여론조사를 보면 (EU 잔류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다”면서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 잔류 반대 결과가 나오면 스코틀랜드 주민은 독립 여부를 다시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도 분노의 표심에 흔들리나=1980년 대 마가렛 대처 전 영국총리는 EU가 결국엔 눈물을 흘리며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대처는 “EU라는 초국가를 만들려는 것은 현대시대에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라고도 했다. 유럽 각 국가들이 다른 언어, 다른 역사를 갖고 문화적 이질감도 큰데 정치인들이 이를 무리하게 하나로 통합하면 그 조직은 와해되고 종국엔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대처의 이같은 경고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난민의 문제는 이같은 EU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난맥상을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특히 최근 저유가와 중국발 경제위기 우려감에 가장 휘청이는 경제권이 EU다.
WSJ에 따르면 유럽 주식시장의 낙폭은 미국 뉴욕시장에 비해 두 배를 웃돈다. 청년 실업문제는 더 심각하다. 그리스의 청년 실업률은 49%에 달하며 스페인 46%, 이탈리아도 38%에 육박한다. 이같은 경제적 취약성은 유럽 각국을 정치적으로 다극화시키고 있다. 급진좌파가 정권을 잡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극우세력이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곳도 있다.
WSJ 등 일부 외신은 이와 관련 미국 정가에서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의 돌풍을 가능하게 한 ‘분노의 표심’이 유럽, 특히 영국에서도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점증하는 이민문제, 경제 불안에 대한 우려감이 미국이나 영국이나 닮은 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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