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죽음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갈 피고인에게 속죄할 기회를 줘야 한다.”

최근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서관 302호 법정. 김상환 서울고법 형사6부 부장판사는 꾸중하다 넷째딸을 숨지게 한 정모(41ㆍ여)에게 이례적인 언도를 한다. “평생 속죄하며 남은 딸들을 잘 키우며 살라”는 것이었다. 정씨는 고개를 숙인채 한참을 통곡했고, 법정을 찾은 4명의 딸은 정씨를 부둥켜안았다.

1993년 결혼한 정씨는 피해자인 넷째 딸 A(당시 6세)양을 포함해 5명의 딸을 낳았다.

그러나 2009년 2월 부터 남편의 불륜으로 따로 살았다. 딸들은 남편이 데리고 갔지만,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남편이 2013년 사망한 후에야 정씨 품으로 되돌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넷째딸은 아버지 슬하에서 제대로 못 먹어 체구가 학급에서 제일 작았다. 내성적인 성격에 식탐도 많았다. 인근 슈퍼마켓에서 과자를 훔치는 등 도벽의 습성을 보였다.

정씨는 A양보다는 아토피를 앓고 있는 막내딸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원래 하던 식당주방일마저 그만두고 걷기도 힘겨워하는 막내딸 간호에 매달렸다.

“A양이 엄마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거죠. 물건을 훔치면 엄마가 자기를 혼내는 데, 그것을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했던 것 같아요” 정씨를 대리했던 김영운 국선변호인의 전언이다.

A양의 도벽을 고치기 위해 정씨는 상담도 하고 하교시간에 마중도 나가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넷째 딸이 또다시 남의 물건을 훔친 지난해 8월 12일 저녁 정씨는 “엄마가 먹고 싶다는 것을 다 사주는데 왜 자꾸 도둑질을 하냐. 네가 자꾸 나쁜 짓을 하면 못 키운다”며 훈계했다.

비극은 예기치 않게 일어났다. 정씨가 답답한 마음에 A양의 손목을 잡아당기는 순간 미끄러져 넘어지던 아이는 옆에 있던 장식장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치고 말았던 것.

응급처치를 하고 119 신고를 해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넷째는 숨지고 말았다.

국민참여재판을 거친 1심 재판부는 “정씨가 단순한 훈육의 범위를 벗어나 스스로 감정을 이기지 못해 과도하게 폭행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형사적 책임이 엄중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딸의 죽음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갈 정씨가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남은 딸들을 돌보며 속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했다.

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