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2012년 3월 17일, 남편의 생일이었던 그 날은 A씨에게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남편의 택시에 탄 손님이 “다른 길로 돌아간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남편의 목을 안전벨트로 졸라 살해하고 현금 28만원을 훔쳐 달아난 것이었다.
이 일은 즉각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이웃은 물론 A씨의 직장에까지 알려졌다.
주변은 예상 외로 냉담했다. 따뜻한 위로는커녕 ‘잘못해서 당했겠지’란 반응이 돌아왔다. A씨는 그럴수록 슬픔을 억눌렀다. 눈물을 참다 못해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였다. 한 달 뒤 그는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 억압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범죄피해자보호법’이 제정된 지 10년을 맞았지만 A씨 같은 범죄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학교에서 ‘왕따’가 목소리 내기 쉽지 않고, 인터넷 성범죄 기사에 피해 여성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악플’이 달리는 게 현실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심리적 고통을 가중시켜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가운데 살인ㆍ성폭력ㆍ강도 등 강력범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 치료ㆍ지원 제도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어 주목된다.
법무부 산하 범죄피해 전문 심리치료 기관 ‘스마일센터’가 그 중심에 서 있다. 범죄자에 비해 피해자의 인권 보호에 소홀했다는 지적에 따라 2010년 설립됐다. 강력범죄로 PTSD 등 심리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의학 진단, 심리평가, 심리치료 등을 통합 서비스하고 있다.
15일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스마일센터 6곳에서 이뤄진 심리지원 실적은 2010년 499건서 지난해 1만4836건으로 폭증, 5년 간 누적 건수는 4만건에 육박했다. 올 들어선 5월까지 8985건의 실적을 기록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에 경찰청이 올해를 피해자 보호 원년으로 선포하고 피해자보호계를 신설, 스마일센터와의 연계를 강화함에 따라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강력범죄 피해자들이 PTSD를 비롯해 대인기피, 공황장애, 언어장애 등 혼자 이겨내기 어려운 심리적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어 스마일센터 같은 제도를 통해 전문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들을 방치할 경우 사회적 문제로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태경 서울스마일센터장은 “범죄 피해자들이 심리 지원을 받지 않으면 자책만 하다가 결국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스마일센터는 임상심리 전문가 등이 상주하면서 짧으면 한 달, 길면 2년 넘게 이어지는 심리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A씨의 경우 처음 1년 4개월은 매주, 현재까지는 매달 심층 치료를 통해 대부분의 증상이 호전됐다.
법무부는 이 같은 성과를 토대로 2017년까지 스마일센터를 1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범죄를 당한 이유가 피해자에게도 있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홀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보호ㆍ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스마일센터에는 가장 등 가계 경제를 책임지는 가족구성원의 범죄 피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가해자의 형사처벌 이후 민사소송에 의한 손해배상청구 이외엔 별다른 길이 없어 보다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