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이제 무서워서 예비군 가겠어요? 차라리 클레이 사격을 하는 게 낫겠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B급 관심사병 출신 최모(23)씨가 총기를 난사해 3명이 죽고, 2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예비군들 사이에서는 “터질 일이 터졌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영점사격훈련을 받고 있는 내 옆 예비군이 나한테 총을 겨눌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4일 육군 등에 따르면 제대 1~8년차 예비군 편성대상은 올해만 270만 명에 달한다.

60만명인 현역 군 장병과 비교했을 때 4배가 넘는 만큼,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한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대로라면 언제 제 2,3의 최 씨가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예비군 5년차인 박모(28) 씨는 “2박3일 예비군 훈련을 갈 때면 현역시절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 관심사병이었던 사람을 보면 혹시 사고라도 칠까 조마조마한 생각이 늘 있었다”며 “실제로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비군 총기난사>연간 동원 예비군 270만…옆 전우가 내게 총을 겨눈다면?-copy(o)1

6년차 예비군 김모(30) 씨도 “신병 때 사격 훈련을 받으면 바로 옆에 조교가 붙어서 있었지만 했는데, 예비군 훈련장에선 대부분 약간 간격을 두고 뒤에 서있다”며 이번 사건이 ‘예견된 것’이라고 쓴 소리를 했다. 실제로 이번 사고도 조교 6명이 총든 예비군 20명을 통제하다 일어났다.

그동안 예비군 훈련장 사고는 주로 관리 소홀, 부주의 등으로 인한 총기ㆍ폭발물 관련 사고였다. 직접적으로 예비군이 총기를 난사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예비군들이 받는 충격은 더 컸다.

더구나 최씨가 현역시절 B급 관심사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예비군들 사이에서는 언제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현역과 달리 예비군은 특별관리대상 지정제도가 전혀 없어 이들에 대한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적잖다.

관심사병은 A,B,C,D급으로 나뉘는데 B급은 ‘가혹행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부류다.

당초 경기 연천군의 한 부대에서 생활하던 최 씨는 선임에게 괴롭힘을 당한 뒤 B급 관심사병으로 분류돼 같은 대대 내에서 중대를 한 번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입대 당시에는 병무청에서 신인성검사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일단 제대를 하고 나면 관심사병 꼬리표는 사라지고, 다른 예비군들과 똑같이 동원 훈련장에서 사격 훈련을 받는다. 제대후 최 씨와 같은 관심사병을 관리할 특별관리대상 지정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사격 훈련 전 군의관이 약식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한다곤 하지만 형식적으로 질병유무를 묻는 정도에 불과하다.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어도 사전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예비군 총기난사>연간 동원 예비군 270만…옆 전우가 내게 총을 겨눈다면?-copy(o)1

실제 최 씨는 전역 후 송파구 방이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퍼붓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씨 주머니에서 “내일 (예비군 훈련에서) 사격을 한다. 다 죽여버리고 나는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돼 사전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씨는 유서에서 “왜 살아가는지, 무슨 목적으로 사는지 모르겠다”는 등 극심한 우울감과 무력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군당국은 최씨와 같은 관심병사가 예비군 훈련에 소집돼도 “이미 군을 제대했으니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없다”며 안일하게 대처하다 이번 참사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까지 예비군 훈련을 지위했다는 군 관계자는 “군 복무를 마친 사람들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일이 없다고 생각해 훈련병 교육보다 느슨하게 임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상호 법무법인 열린사람들 변호사는 “군 행정이 현역에 집중돼 있다보니 동원예비군은 신경쓸 여력이 없어 (관심사병 출신 예비군을) 놓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다”면서, 예비군을 대상으로 한 특별관리대상 지정제도 마련 등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