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권 금품 제공을폭로한 48분 분량의 언론 인터뷰 전문이 공개된 뒤 성 전 회장의 ‘메모지’에만 등장한 3명의 수사 여부가 검찰에 고민거리가 됐다.
이달 9일 성 전 회장 사망 당시 발견된 금품 메모지에는 ‘김기춘 10만 달러, 허태열 7억원, 홍준표 1억원, 부산시장(서병수 시장으로 추정) 2억원, 홍문종 2억원, 유정복 3억원, 이병기, 이완구’라고 적혀 있다.
이 가운데 성 전 회장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금품 제공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인물은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완구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지사,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등 5명이다.
이 가운데 이 총리는 애초 금품 메모지에는 액수가 없었지만 인터뷰에서 3000만원이라는 액수는 물론 돈의 성격(2013년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 자금), 수수 장소(선거사무소)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된 상태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인터뷰에서 추가로 윤모(52)씨가 자금 배달자로 지목되며 목격자로 등장했고, 홍문종 의원 역시 성 전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이 2012년 대선자금으로 소개되며 의혹이 구체화됐다.
공소시효 문제가 법적 걸림돌로 남아있는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을 일단 제외해도 이들 세 명은 검찰 안팎에서 유력한 소환 대상자로 분류된다.
문제는 유정복 인천시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추정), 그리고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유 시장과 부산시장은 메모지에는 금품 액수가 드러나지만 녹취록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어떤 정황도 찾을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이 각각 2012년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서 각각 직능총괄본부장, 선거대책총괄본부장을 맡고 있었던 점에 비춰 이 돈이 대선자금과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의혹 제기가 가능하지만 단지 추정일뿐 수사에 참고할 단서는 현재 없는 상태다.
이병기 실장은 메모지에 액수가 기재돼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인터뷰에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검찰로서는 수사하기 가장 까다로운 케이스에 속한다.
법조계에서는 일단 메모지에 실명이 언급된 이상 검찰이 이들에 대한 수사 자체를 회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수사 성과를 내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치자금 또는 뇌물 사건은 공여자와 수수자의 진술을 기초로 추가 물증이나 정황 증거를 확보해 실체를 규명해 나가는 게 통상적인 수사 기법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당사자들이 하나같이 의혹을 부인하는 가운데 그 진위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공여자 진술을 확보할 수 없는데다 홍준표 지사처럼 ‘배달자’가 드러난 것도 아니다.
법조계 한쪽에서는 이런 상태에서 세 사람을 소환조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피의자 소환조사는 충분한 물적 증거를 확보해 빠져나갈 구멍을 막은 뒤 피의자의 주장을 차례차례 깨뜨리는 절차”라며 “이런 의미에서 보면이들 3인은 뚜렷한 추가 물증이 나와야 소환조사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이 성 전 회장을 보좌하며 동고동락한 경남기업 심복들로부터 이들 3인의 금품수수와 관련한 의미 있는 진술을 받아내거나 이른바 ‘비밀장부’ 같은 부인하기 어려운 물증을 찾아낸다면 수사 흐름은 단번에 뒤바뀔 수 있다.
검찰이 전날 성 전 회장의 최측근을 포함한 사건 관계자 11명의 자택 등에 대한일제 압수수색을 통해 무엇을 확보했는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