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시장에서 항상 세계 최고, 최대의 수식어가 따라 붙던 거래소가 있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다. 이 거래소는 미국의 광활한 중서부 지방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표준화된 선물계약을 처음 만들어 1848년 현대적 의미의 세계 최초의 선물거래소로 문을 열었다. 이어 1865년에는 계약 불이행을 막기 위한 증거금 제도를 도입하는 등 세계 최초의 선물청산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그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품거래소에서 금융파생 등 종합거래소로의 변화, 로컬 거래소에서 글로벌 거래소로의 변환, 전자거래 방식의 도입 등 시대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늦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2007년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 합병되고 말았다.
이를 인수한 CME는 1898년 CBOT에서 달걀, 버터 등 일부 축산 거래부문이 떨어져 나와 만들어진 거래소였다. 후발 거래소였던 만큼 CME는 사업영역 확보를 위해 뼈를 깎는 혁신을 거듭해야 했다. 농축산물 거래소에서 출발한 CME는 1972년 통화 선물상품을 상장시켜 금융파생시장을 새롭게 연데 이어 1980년대에는 주가지수 선물, 1990년대 들어서는 전자거래 플랫폼인 글로벡스를 시작했고 미니지수 선물을 출시하고, 날씨 파생상품 같은 기상천외한 상품을 연이어 시장에 내놓았다. 그 결과 세계 유수 파생상품 거래소로 발돋움 했다.
그러나 세계 거래소간의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혁신의 아이콘으로 세계 파생상품시장을 선도해 온 CME마저도 급격한 금융 환경변화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1990년대 말, CME는 강한 위기감에 빠져 있었다. 전자 플랫폼으로 완전무장하고 1998년 탄생한 유럽의 신생 거래소 유렉스(Eurex)가 불과 1~2년만에 파생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된 것이다. 유렉스는 상품, 서비스 등 모든 것을 고객 수요에 맞춘 철저한 금융서비스 회사로 개편했다. 이를 위해 유렉스는 회사 구조도 주식회사로 바꾸고 상장(IPO)까지 완수했다. 회원사들의 이해관계에 얽메이지 않고 시장에서 평가받도록 시장 친화적이며 고객 지향적인 경영체제를 완비하고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이에 CME는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위기관리팀을 구성해 개혁 작업에 돌입했다.구조개편 방향으로 다섯 가지가 설정됐다. 첫째, 조직은 회원제에서 비즈니스 서비스 조직으로 변화시킨다. 둘째, 상장품목은 지역에 국한된 상품에서 세계시장을 겨냥한 상품으로 재편한다. 셋째, 사업영역은 증권과 파생시장, 장내와 장외시장을 모두 포함한다. 넷째, 사업은 고객만족을 철저히 지향한다. 다섯째, 정보기술은 통합기술 체계를 통해 효율성을 높인다.
CME는 2000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2년 뒤에는 주식 상장까지 마쳤다. 기업공개 이후, 고객의 수요에 맞춘 신상품을 끊임없이 출시하고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글로벌 상품군을 갖췄다. CME는 2007년 미국내 라이벌인 CBOT을 인수한데 이어 뉴욕상업거래소(NYMEX)마저 합병했다. CME는 마침내 유렉스로부터 세계 선두 자리를 빼앗아 오늘날까지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