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민상식 기자] 1917년 가난한 아르메니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 커크 커코리언(Kirk Kerkorian).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국 8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공사판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친형의 권유로 복싱을 시작했다. 복싱에 재능을 보인 커코리언은 마치 라이플(저격용 소총)처럼 정확하고 빠른 강펀치로 이름을 날리며 ‘라이플 라이트 커코리언’(Rifle Right Kerkorian)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20세 때 첫 승리를 거머쥔 후 은퇴 때까지 복싱 전적은 33승 4패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다. 한 때 태평양 웰터급 아마추어복싱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70년이 지나 올해 97세가 된 커코리언 회장은 기업매수 전문업체 트라신다를 운영하며, 미국의 대표적 투자자이자 카지노 재벌이 됐다.

[슈퍼리치]한때 생계형 ‘운동선수’였던 갑부들

그는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때 공군으로 입대해 조종사로서 비행 기술을 쌓은 뒤 전역 후 전세 여객기를 운영해 사업 밑천을 벌었다. 이후 라스베이거스 부동산 투자에서 큰돈을 벌었다.

카지노와 영화산업 등에 대한 투자로 성공을 거둔 커코리언은 1988년 조국 아르메니아에서 발생한 지진 희생자를 돕기도 했다. 그의 순 자산 규모는 42억달러(한화 약 4조6000억원)다. 70세가 넘은 이후 자신이 설립한 자선단체 ‘린시재단’을 통해 자선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과거 복싱은 인기 스포츠 중 하나였다. 이에 가난한 젊은이들이 생계를 꾸리기 위해 권투를 배워 대전료를 받았다. 커코리언도 마찬가지였다. 가난과 역경을 딛고 복싱 챔피언이 되고 억만장자로 거듭난 그의 인생역전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한 소년도 커코리언처럼 운동을 통해 삶의 희망을 봤다. 1953년 뉴욕 브룩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어린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의 집은 매우 가난했다. 동네는 노숙자들로 넘쳐났다. 슐츠의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로 일했지만 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고 해고됐다. 슐츠는 열두 살 때부터 아침에 신문배달을 하고 가죽공장과 식당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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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삶의 탈출구는 운동이었다. 빈민가에서 탈출하는 길은 오직 운동 밖에 없다고 생각한 이후 미식축구와 야구, 농구에 매진했다.

결국 그는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덕분에 전액 장학금을 받는 체육 특기생으로 노던미시간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운동으로는 크게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대학 졸업 후 복사기 판매업체인 제록스에 들어가 세일즈맨으로 3년간 일했다. 1979년에는 가정용품 업체 하마플라스트(Hammarplast)에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됐다.

1982년 슐츠는 우연히 접한 스타벅스의 커피맛과 경영방식에 반해 스타벅스 마케팅 담당 이사로 합류했다. 이후 이탈리아 스타일의 에스프레소 바 일지오날레(Il Gionale)를 창업했다가 1987년 스타벅스를 인수,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인수 당시 스타벅스의 매장 수는 11개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 스타벅스의 점포 수는 전 세계적으로 2만여개에 달한다.

2000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슐츠 회장은 2008년 최고경영자(CEO)에 복귀했다. 그의 순자산은 26억달러에 이른다.

특히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의 시간제 직원을 포함한 모든 종업원과 그의 가족에게 종합적인 의료혜택을 주고 있다. 사고를 당한 후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회사에서 쫓겨난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