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까지 올해 나라 살림 누적 적자가 90조원을 넘었다. 같은 기간 기준 역대 3번째로 큰 적자 규모다. 정부는 임기 후반기 국정목표를 ‘양극화 타개’로 정하고 필요한 경우 시장에 개입해 분배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나선 것인데, 확장재정 기조로의 전환이냐는 지적엔 단호한 부인을 하고 있다. 양극화 대책을 위해선 재정동원이 불가피하지만, 적자 규모가 큰 마당에 건전재정을 달성하려면 국세수입을 늘리고 지출은 줄여야 한다. 확장재정엔 국채발행이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목표만 내놓고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 구체적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으니 국민은 혼란스럽다.

기획재정부의 ‘월간 재정동향 11월호’에 따르면 1~9월 총수입은 439조4000억원, 총지출은 492조3000억원으로 그 차액인 통합재정수지는 52조9000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 흑자 수지를 차감한 관리재정수지는 91조5000억원 적자다. 장기 미래를 위해 거둬들인 사회보장성 기금은 당해연도 재정활동 결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관리재정수지가 실질적인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지표로 쓰인다. 기업실적 저조로 법인세가 줄어든 것이 적자를 키웠다. 9월 누계 기준 적자는 2020년(108조4000억원), 2022년(91조8000억원)에 이어 역대 세 번째 규모다. 연말로 갈수록 적자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기재부의 전망이다.

이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내년 초 양극화 해소 종합 대책을 직접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시장의 일차적 분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양극화가 초래된다면 정부가 나서서 이차적으로 분배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단순한 확장 재정이 아니라 양극화 타개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취지”라고도 했다. 양극화 타개 뿐 아니라 내수진작을 위해서도 내년 재정 지출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5년 예산안 총괄분석 보고서’에서 내년 저성장률 전망과 다양한 경기 하방 요인, 저출생·지방소멸·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의 적극적 대응 필요성을 제기했다.

예정처는 내년 총수입은 정부 예상보다 줄고, 총지출은 늘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게 되면 적자가 확대돼 건전재정 달성은 어려워지고, 내수 진작이나 양극화 타개를 위한 정책여력도 줄어들게 된다. 지금은 막연한 선언보다 구체적 방법론이 필요하다. 병을 숨기고 ‘땜질 처방’만 반복하다간 나중엔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