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디스토피아 넷플릭스 ‘지옥2’
두 부활자…서로 다른 지옥을 묻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당신의 지옥과 나의 지옥은 다른가 봐요.” (‘지옥’ 시즌2 박정자의 대사 중)
누구에게나 지옥은 있다. 가슴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 꺼내보일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 끝도 없이 밀려드는 그리움, 안간힘을 써도 벗어날 수 없는 기억….
‘신의 목소리’가 당도하면, 세계는 정의와 상식, 질서가 무너진다. ‘신탁’을 마주하기도 전부터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지옥을 먼저 살았다. 불행은 더 큰 불행을 낳고, 악은 더욱 잔혹한 악을 뿌린다. 불가사의한 재난 같은 ‘심판’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디스토피아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부활자 박정자를 연기한 배우 김신록은 “작품이 제시하는 질문들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드라마 속 인물 각자의 지옥이 다르다는 설정이 인상 깊었다. 각자가 자신만의 지옥을 겪고, 그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했다.
‘부활자’ 박정자 “지옥같은 현실에서 ‘사라진 희망’ 표현”
“끝없는 그리움, 절망감.”
초점을 잃은 공허한 눈, 매가리 없이 공기를 섞어 속삭이는 목소리, 길게 늘어뜨려 산발이 된 머리카락…. “지옥에서 무엇을 봤냐”고 묻자 박정자는 이렇게 말한다. 두 아이의 엄마였고, 고단한 삶을 짊어진 가장이었던 그에게 ‘죽음의 고지’는 날벼락처럼 찾아왔다. 시즌1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에피소드의 주인공. ‘천사의 고지’, 죽음의 ‘시연’, 그리고 시즌1 마지막 장면에서 부활한 사람이다.
“다시 돌아올 땐 새로운 교주라고 되는 건가 싶었어요. (웃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옥의 심연을 마주한 두려움은 그에게서 말을 앗아갔다. 박정자를 연기한 김신록은 “부활한 이후 말을 하지 못하고 새진리회에 4년간 갇혀 있어 몸과 소리가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언어는 잃었지만 대신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 사람의 죽음을 내다보는 예지력이다.
하지만 박정자의 특별한 능력은 ‘초월적 존재’로서의 모습이 아닌 내면의 감정을 외부로 꺼내 보여주는, 매우 인간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는 “초탈한 선지자가 되기보다 인간적인 절망과 그리움을 반복적으로 느끼는 인물로 그리고자 했다”며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감정의 생경함을 그대로 표현하려 했다”고 돌아봤다. 박정자의 지옥은 다시는 두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절망과 그리움, 그가 마주한 희망은 부활해 돌아온 뒤 아이들과의 만남이었다.
연상호 감독이 박정자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사라진 희망’이다. 결코 닿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것에 마침내 닿아, ‘지옥’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의외의 순간’이 절망에서 길어올린 빛 한 줄기다.
김신록은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만의 지옥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며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서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각자가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옥을 나오니 또다른 지옥…정진수 “공포·두려움이 내 지옥”
20년 전, ‘천사의 고지’를 받았다. 하염없이 “왜?”라고 물었다.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이유를 물어도 해답을 구할 수 없었던 정진수는 죽음을 앞둔 자신의 고통과 공포를 세계에 이식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예측불가능한 ‘천사의 고지’를 ‘심의 심판’이라고 설파하며 새진리회의 교주가 된 이유다.
“늘 겁쟁이로 살다가 고지를 받고 느끼게 된 공포와 두려움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종교가 지배하는 세계의 통치자 같은 존재죠.”
배우 김성철이 연기하는 정진수는 ‘지옥’ 시즌2에 등장하는 또 다른 부활자다. 악을 단죄하겠다는 소망을 가진 위험천만한 종교 지도자. 모두를 혼란케 한 세계를 만든 악의 근원이다.
이 작품에서 김성철은 마약 투약 혐의로 하차한 유아인 대신 투입됐다. 광기와 확신을 오가는 교주와 같았던 유아인이 ‘정진수를 자기화’해 꺼냈다면 김성철은 웹툰의 실사화에 주력했다. 연상호 감독이 김성철을 낙점한 것은 “김성철이 가지는 자기 확신”과 “원작이 가진 신경절적이고 감정적인 모습을 잘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물론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김성철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내릴 것”이라며 “망가진 세상의 교주로 세상을 지배하는 인물 자체가 너무 매력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어 “처음부터 비교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티모시 살라메가 와도, 양조위가 와도 비교당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성철은 오로지 자신만의 정진수를 연기하기 위해 캐릭터 안으로 몰두했다.
시즌2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절대자’로 군림했던 시즌1의 정진수가 인간적인 나약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0년 간 지옥에 갈 것이라는 공포를 안고 살다, 8년 간 무한 지옥을 경험한 정진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됐다.
그는 “정진수는 해체돼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며 “억겁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사지가 절단되는 경험을 하고 돌아오면 제정신일 수가 없다. 그 공허함을 정진수의 가장 중요한 모습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부활했지만, 정진수의 지옥은 끝나지 않았다. 누구보다 ‘비범한 인물’인 듯 보이나 버림받는 두려움, 자신을 들켜버릴지 모른다는 공포는 정진수에게 또 다른 지옥이 되며 그를 삼켜버린다. 죽음의 고지를 받은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는 지옥 사자가 되고 만 것이다. 연상호 감독은 “정진수가 지옥 사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면의 물질화”라고 했다.
“정진수는 자기 안의 고통과 공포를 이기지 못해 결국 지옥 사자가 됐다고 생각해요. 이 세계를 디스토피아로 만든 장본인이고, 교리로 사람들을 타락시켰죠. 사람들을 이용하다 지옥에 끌려갔던 사람이 또다시 이용하다 끌려간 셈입니다.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