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내년 1월2일부터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등 최첨단 기술과 관련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기로 했다. ‘우려 국가 내 특정 국가 안보 기술 및 제품에 대한 미국 투자에 관한 행정명령 시행을 위한 최종 규칙’을 발표한 것인데, ‘우려 국가’로는 중국과 홍콩, 마카오를 못박았다. 사실상 미국 자본의 대중 최첨단 기술 투자를 전면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반도체의 경우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집적 회로용 고급 패키징 기술, 슈퍼컴퓨터와 관련된 거래 등이 금지되고 양자컴퓨팅은 양자 감지 플랫폼의 개발·생산, 양자 네트워크·양자 통신 시스템 개발·생산 등의 거래가 금지된다. AI 분야에서는 모든 AI 시스템 개발과 관련된 거래가 금지된다. 첨단기술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게 꽁꽁 묶은 것이다. 해당 기술이 중국 군사력 증강에 활용될 수 있다는 논리인데, 한마디로 국가 안보에 위험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번 조치는 미국 자본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우리 업체에 큰 영향은 없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는 늘 조마조마한 상태다. 미국은 2022년 첨단반도체 장비 수출을 막으면서 한국은 1년간 유예했다가 지난해엔 장비 반입을 허용했다. 하지만 점차 규제를 강화할 경우 한국도 예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고급 반도체 설계나 제조 패키징이 제한되고 기술적 제약에 따른 성장 둔화 등 연쇄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불안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진 셈이다.

미중 기술·무역 전쟁은 앞으로 더 격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면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타격이 더욱 커질 수 있다. 트럼프는 반도체 공장 건립 보조금마저 없애고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WTO(세계무역기구)의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현재 반도체가 무관세로 수출입되고 있는 상황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반도체 시장이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의 보복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희토류 등 핵심 자원의 수출 제한에도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위기를 돌파하려면 기술 역량을 높이는 게 필수다. 첨단산업은 곧 국가 안보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등 첨단 산업을 긴급하게 다루고 보호하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안이한 상태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할 반도체법이나 AI기본법 등 법적 틀조차 없고, 인재들이 대거 빠져나가는데도 속수무책이다. 모처럼 여야가 민생협의체를 가동하겠다고 하니 관련 법을 신속 처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