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8일 최대 16조원 규모의 기금 여윳돈을 끌어다 쓰는 내용을 골자로 한 ‘2024년 세수 재추계에 따른 재정 대응방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달 26일 올해 세수가 당초 예측에 견줘 29조6000억원 부족하다고 발표하며 밝히지 않았던 대목이다. 동원되는 기금은 외국환평형기금(4조~6조원), 공공자금관리기금(4조원), 주택도시기금(2조~3조원) 등이다. 여기에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도 당초 계획보다 6조 5000억원가량 덜 내려보내고, 당초 편성했던 예산 7조~9조 원을 지출하지 않는 불용예산까지 합쳐 올해 세수 부족분을 충당하기로 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 등을 고려해 국채를 추가발행하지 않는 대신 정부 내 가용재원을 우선 활용하기로 했다”며 “복지·일자리 등 민생·사회간접자본 사업을 최대한 차질없이 집행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건전 재정을 주요 국정 과제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나랏빚(국채 발행)을 늘리지 않고 정부 내 가용 재원을 활용하려는 것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국가 채무가 내년에 처음으로 1200조원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나랏빚을 더 늘리는 것은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고 대외 신인도가 악화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 이상으로 세계 9위 수준이고 외평기금 규모가 270조원이 넘어 여윳돈을 활용해도 당장 뒤탈이 없어 보이고, 남아도는 교육교부금을 줄여 취약계층 지원에 활용하는 것도 나빠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불용예산이 49조5000억원 규모였던 것과 비교하면 7조~9조원은 최소한의 조치로도 보인다.

그러나 기금은 기금의 목적이 있는데 그 재원을 다른 데 전용한다는 건 기금의 존재 이유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런 타성에 젖기 시작하면 세수기반 확충 등 정공법보다 눈가리고 아웅식 꼼수가 만연해진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외평기금에서 20조원을 끌어썼고 올 들어 한은에서 빌려 쓴 급전도 152조원이 넘는다. 이제는 무주택 서민의 주거복지 사업에 쓰이는 주택도시기금에도 손을 벌리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3회계연도 결산 분석’에서 “달러 대응 자산이 있는 ‘금융성 채무’를 향후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로 전환해 국가 채무의 질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쉽게 풀이하면 정부가 새 빚을 내는 대신 보유 자산을 가져다 썼고 갚아야 할 빚이라는 점에서 오십보백보라는 뜻이다.

‘기금 돌려막기’라는 고육책은 주먹구구식 세수 추계에서 기인한다. 지난해 정부가 고수한 ‘상저하고’(하반기 경기 반등) 전망이 빗나가면서 세수 오차는 4년 연속 발생했다. 세수 예측의 정확성을 높여야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