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이 12년만에 단독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공명당과의 연립 여당 과반도 15년만에 무너졌다. 이시바 시게루 정권이 출범 한 달도 안돼 맞은 최악의 위기다. 이번 선거 결과는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의 ‘비자금 스캔들’과 고물가·저임금 등 경제 부진에 대한 일본 유권자들의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에 민심은 등을 돌린다. 여야 할 것 없이 우리 정치권이 반면교사 삼아야 할 일이다.
28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선거에서 전체 465석 중 자민당은 191석, 공명당은 24석을 차지해 합계 215석으로 과반(233석)에 미달했다. 두 정당은 선거 시작 전 의석수가 각각 247석, 32석으로 총 279석이었다. 자민·공명당이 과반 의석을 놓친 것은 옛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자민당은 2012년 이후 4차례 총선에서 매번 단독 과반을 달성하며 ‘1강 독주’를 해왔다. 자민당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것은 정치적으로는 부패, 경제적으로는 무능이었다. NHK에 따르면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원 46명 중 절반이 넘는 28명이 낙선으로 분류됐다. 교도통신의 선거 전 여론조사에선 이시바 시게루 정권의 우선과제로 ‘경기·고용·물가 대책’이 1위로 꼽혔다.
다수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 일본 정치제도에서 자민당이 수장을 전격 교체하고 태평양 전쟁 이후 최단기간 조기 총선의 승부수를 던졌으나 사실상의 ‘불신임’을 받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총리가 여당의 부패한 구조와 일본 경제 체질을 개선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유권자들은 본 것이다. 얼굴만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민심의 경고다. 이시바 총리는 저성장 극복을 위한 돈풀기가 핵심인 ‘아베노믹스’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방향이나 엔화 약세로 인한 고물가·저임금을 타개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번 선거 결과로 자민당이 추진하는 개헌이나 이시바 총리의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 등의 정책 추진이 힘을 받기 어려워졌다. 향후 일본 정계는 연정 확대, 정권교체, 이시바 퇴진 등을 놓고 혼돈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치권을 돌아보면, 행정권력을 쥔 국민의힘이나 입법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공히 각종 정치스캔들과 ‘사법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민생은 위기이고 경제는 비상이며 안보는 불안하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제 몫을 못하고 여야는 대치만 거듭한다. 이 중 민심을 먼저 듣는 쪽은 살아남고 끝까지 외면하는 세력은 크게 심판받으리라는 것이 이번 일본 선거 결과가 새삼 일러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