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올해 3분기에 매출 17조5731억원, 영업이익 7조300억원으로 창사 41년만에 최대 실적을 냈다. 특히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6조800억원대)를 크게 웃돌았을 뿐 아니라 반도체 슈퍼 호황기인 2018년 3분기 6조4724억원마저 훌쩍 뛰어넘어 역사를 새로 썼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이 4조원대로 추정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영업이익률이 40%에 달하는 인공지능(AI) 고부가가치칩이 판을 뒤집은 것이다.

서프라이즈 실적을 주도한 건 역시 HBM이었다. HBM 매출은 전 분기(2분기) 대비 70% 이상, 전년 동기보다는 330% 이상 늘었다. 3분기 전체 D램 매출의 30%가 여기서 나왔다. HBM은 D램을 여러 장 쌓아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일반 D램보다 5배 가량 비싸다. 낸드 역시 고부가가치 제품이 실적을 이끌어 eSSD가 3분기 낸드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60테라바이트(TB) 용량의 서버용 SSD를 업계 유일하게 대량 공급하고 있다. 결국 기술력에 바탕한 수익성 높은 제품이 실적을 이끈 것이다. 앞으로도 전망이 좋다. SK하이닉스는 4분기 HBM 매출이 10%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물량과 가격도 고객과 합의가 끝난 상태로 AI칩 수요와 AI 투자 확대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예상보다 매출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는 선제적 투자와 기술혁신의 결과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SK하이닉스는 HBM이 주목받지 못하던 때에 도전에 나서 2013년 세계 최초로 HBM1 상용화해 성공했다. 이후 HBM2, HBM2E, HBM3 등으로 기술력을 높여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서 리더십을 확보해왔다. 2023년엔 AI 학습·추론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 처리에 최적화된 HBM3E 양산으로 차이를 벌였다. 경쟁사보다 빠르게 기술 우위를 확보하며 AI열풍의 중심에 선 것이다. 특히 AI칩 생태계를 이끄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GPU에 필요한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AI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HBM품질테스트 통과도 늦어지고 있다. 레거시 메모리 D램시장에선 중국 반도체의 시장 잠식 우려 마저 커지는 상황이다. AI 물결에 잘 올라탄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운명이 갈리고 있는 것이다. 메우지 않으면 틈은 점점 더 벌어지게 마련이다. 지금 기술혁신 속도는 생각의 속도 만큼 빠르다. 멈칫하는 순간 경쟁사들이 치고 올라오는 게 글로벌 경쟁의 냉엄한 현실이다. 시장 변화를 읽는 예민함과 도전, 혁신만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