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운동회의 계절이다.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인 가을에, 그것도 10월에 학교생활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운동회일 것이다. 최근 아이들의 운동회에 참여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낀 부분은 학부모의 참여가 전반적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마 여러 가지 이유를 고려해서일 테다. 미국에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필자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학교 행사 중 하나는 필드데이(Field Day)였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가을운동회와 유사하였다.
해당 행사는 학년별로 게임을 하는 것이 주된 프로그램으로 각 방의 방장을 맡은 학부모들은 자원봉사 모집을 통해 그날 행사를 도울 사람의 학부모 명단을 작성한다. 자원봉사 종류는 다양하다. 풍선 불기, 행사 앞뒤 정리하기, 게임 진행하기 등등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역량껏 진행한다.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누구도 눈치 주지 않고,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위세를 부리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모든 학부모에게 명단이 투명하게 공유되며 선생님은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가끔 담임선생님의 자원봉사 요청 메일이 오긴 하지만 아주 소수의 상황이며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모든 아이가 원만한 학교 생활을 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본인이 여러 역할 중 하나를 수행한다고 생각하는 듯하였다.
나아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아무런 이득을 바라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필드데이 뿐 아니라 현장 체험학습, 학교 이벤트 등 모든 특별한 이슈는 학부모들과 즉각적으로 공유하는 것에서 나아가 함께 아이들 행사에 참여하는 와중에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적어도 필자가 경험한 미국 초등학교 교육은 그러하였다.
초등학교는 아이들에게 공식적인 사회생활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때부터 아이들이 생활하는 주변 환경은 자연스레 체화되어 본인의 일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필자가 경험한 미국 초등학교 생활에서 학부모들의 참여는 교사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 무언가가 아니었고,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위한 무언가도 아니었다. 그냥 공동체가 존속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내 아이가 사는 공간, 내 가족이 사는 공간, 내 이웃이 사는 공간에서 누군가 함께 돕고 또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며 서로에게 감사한 일이었다.
서로 간의 불신으로 학부모의 학교 출입조차 평범한 일이 아니게 된 우리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일 테다. 교육감 지방 선거가 한참인 요즘 수많은 이슈가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입시 경쟁, 또는 인권 등과 관련한 공약 이전에 무엇보다도 어릴 때부터 공동체의 의미가 스며들 수 있는 교육의 방향을 먼저 생각해본다.
이윤진 건국대 건강고령사회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