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 대출 정책이 또 혼선을 빚었다. 무주택 서민들의 집마련을 위한 저금리 정책금융상품인 디딤돌대출 제한을 두고 열흘여간 ‘축소→유예→축소’로 두번이나 방침을 바꿨다. 정부가 금리인하를 앞두고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본격화한 지난 7월부터 불과 넉 달도 안되는 사이 대출 관련 정책이 나올 때마다 매번 극심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실수요자들의 불안과 부담이 가중되는 사이 은행들의 ‘이자 장사’로 벌어들이는 돈은 더 불어만 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3일 디딤돌 대출 축소 방안을 조만간 발표하되 비수도권은 적용을 배제할 것이라고 했다. ‘맞춤형 개선 방안’과 ‘현재 대출 신청분에 대해선 제외’ ‘적정한 유예기간 부여’ 등의 조건을 달았지만 축소 조치를 유보하겠다는 방침을 닷새 만에 뒤집은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 11일 시중은행에 디딤돌대출 취급을 제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한도를 줄이고 생애 첫 주택 구입 때의 LTV(담보인정비율)도 낮추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반발이 잇따르자 일주일만인 18일 축소를 유보했다가 번복했다.

시장과 소비자들에 엇갈린 신호와 정책을 내던져놓고 혼란에 빠뜨린 것이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초 금융당국은 은행들을 불러놓고 “가계대출을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압박했다. 시중은행들은 8월까지 20차례 대출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나 실수요자들의 비판이 잇따르는데다 집값 오름세에 가계부채 증가세가 잡히지 않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권의 금리인상은 잘못”이라고 했다. 그 사이 정작 금융당국은 대출 문턱을 한층 높인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적용을 애초보다 두 달 연기해 시행했다. 금융당국의 금리인상 비판에 은행들은 여신 심사 규정을 강화하며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23일 금융감독원이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은행별 자율 여신심사 강화 조치 내용’에 따르면 주요 9개 은행은 7월부터 9월 23일까지 총 21번의 대출 규정을 변경했다. 은행으로선 ‘이자 장사’에 호재일 수 밖에 없다. 과열된 대출수요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비싼 이자로 돈을 빌려줬고, 대출규제 강화로 자격·신용 요건이 한층 좋은 차주와 거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23일 일부 은행을 시작으로 수신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곧 다른 시중은행들도 따라갈 것이다.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 정책으로 대출금리는 그대로거나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 예금 금리와 차이는 더 벌어지는 추세다. 정부의 설익고 어설픈 정책이 은행의 배만 불리고 소비자들만 ‘봉’으로 만드는 셈이다. 금융 정책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