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기업이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도 경영상황이 더 나빴던 것으로 나왔다. 한국은행이 93만여개 기업의 지난해 실적을 분석한 결과 전년 대비 매출액 증가율이 1년 전(15.1%)보다 16.6%포인트나 하락한 -1.5%로 나왔다. 201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로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1.1%)보다도 낮다. 매출액증가율은 기업의 성장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지난해 기업 사정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는 의미다.

수익성도 최악이다.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2022년 4.5%에서 2023년 3.5%로 떨어졌다.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이익이 크게 줄었다는 뜻이다. 기업이 영업을 통해 번 돈으로 대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비율도 191.1%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241.3%)보다도 낮다.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의 2배도 안 돼 대출 이자 갚기도 버거웠다는 얘기다. 기업 절반 가까이(47.8%)는 영업이익보다 이자 비용이 컸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낸 셈이다.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뒷걸음친 것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장기화된 고금리·고물가 탓이 크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석유화학 등 대기업의 타격이 컸다. 2022년 15.5%의 매출액 증가율을 보였던 대기업은 2023년 -4.3%로 2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이러니 법인세 비중이 큰 세수가 모자라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는 사정이 나아졌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불안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미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반도체 겨울’ 전망이 나오고 ‘전기차 캐즘’으로 자동차 수출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밀어내기 저가 공세까지 더해 기업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것이다.

한마디로 복합위기이다. 전방위적 압박과 위험을 기업 홀로 헤쳐나가기엔 역부족이다. 주요 경쟁국들이 국가가 나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기업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도 그래서다. 경직된 노동시간 등 규제를 걷어내고 인프라 지원·인재양성을 통해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건 기본이다. 기업이 기술 개발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지배구조 개편 등 경영리스크가 자꾸 더해져선 안된다. 글로벌 경쟁에선 잠깐 타이밍을 놓치면 갈수록 따라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삼성이 AI기술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비단 삼성 뿐이겠는가.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밀고 끌고 기업은 혁신으로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