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연내 1000원 붕괴 가능성

美 QE3·유럽 무제한 국채 매입 日 아베총리 통화증발도 불사 올해 신흥국 동참 전망 잇달아 원화환율 적정수준 유지가 관건

글로벌 ‘환율전쟁’의 포성이 연초부터 심상치 않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경기 부양을 위한 ‘돈 찍어내기’ 경쟁을 벌이면서 유동성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중국 및 신흥국가들도 전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환율전쟁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당장 새해 벽두부터 원/달러 환율이 1070원 선 아래로 수직 하강했다. 올해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선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환율전쟁의 ‘전범(戰犯)’은 선진국들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이 경기 부양을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통화를 찍어내면서 자국 통화의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은 2009년과 2010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3차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3차 양적 완화는 매달 40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 채권을 정부가 사들여 시중에 현금을 푸는 조치다. 초저금리를 2015년까지 유지하는 등 경기 부양을 위한 고강도 금융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새해부터 매달 45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매입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사실상 무차별적인 달러 살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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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에서 원달러 환율과 원에 소폭상승을 보이고 있다.(다중촬영)<br />김명섭 기자 msiron@ 풍부해진 글로벌 유동성이 원화 강세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3일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의 환율 시세 모니터가 저점 경계감에 따른 환율 상승을 알리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일본도 환율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집권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윤전기’라고 불릴 정도다. 재정 지출은 물론, 필요하면 통화 증발을 통해서라도 엔화 약세를 유도해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침체된 일본 경기를 살리겠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공약이다.

미국과 일본에 가려져 있지만 유럽도 무제한 양적 완화를 벌여 환율전쟁을 벌이는 주범 중 하나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해 9월부터 무제한 채권 매입 프로그램과 장기 대출 프로그램 정책을 쓰고 있다. 재정 불량국가들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무제한 국채를 매입해 시중에 돈을 풀고 있다.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은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진 않지만 언제든지 반격에 나설 태세다. 풍부한 외환 보유량을 바탕으로 환율전쟁에 동참할 경우 그 여파가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금리 인하 등을 통해 유동성을 늘려 환율전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2013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그동안 금리 인하에 소극적이었던 신흥국 역시 통화 완화 정책에 동참하면서 경쟁적인 통화 정책 도입이 이뤄질 것”이라며 “신흥국으로의 자금 유입이 확대되면 환율 하락 폭이 더욱 커지면서 신흥국이 금리를 낮출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고 내다봤다.

주요국들의 ‘돈 풀기’가 확산되면 원/달러 환율 하락 등 원화 강세는 피할 수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양적 완화 등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2000년 2조6000억달러에서 지난 8월 13조7000억달러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처럼 선진국들이 찍어낸 유동성 중 상당 부문이 우리나라로 몰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제가 안정돼 있어 원화가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원화 강세가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되거나 적정 수준을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2011년 말 1150원대에서 올해 1060원대로, 100엔당 원화는 1490원대에서 1210원대로 급락한 상황이다. 당장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환율이 급강하자 “ ‘재정절벽’ 문제가 해소되면서 외국 자본 유입과 함께 환율 등의 쏠림 현상이 걱정된다. 적극적이고 단계적인 대응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말로 사실상의 구두 개입을 통한 속도 조절에 나섰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외환 건전성 규제를 강화해 절상 기대를 낮추고 외환 보유액을 쌓으면서 절상 속도를 늦춰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