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기획재정부 차관을 거쳐 국무총리실장에 오른 김동연 내정자, 아시아인 최초로 자동차 명가 BMW그룹 본사 임원에 오른 김효준 사장, 국내 최고 세탁기 박사 조성진 LG전자 사장, 홍대 청바지팔이에서 동대문을 거쳐 한국인 최초 프랑스 프렝탕 백화점에 입성한 최범석 디자이너….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남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 파릇한 청춘을 즐기는 사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생계에 맞서 돈벌이에 나섰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을 흔히 ‘고졸’이란 한 단어로 묶어 부른다. 이 표현은 중의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현실에선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다. 고졸은 일종의 ‘주홍글씨’인 셈이다.
하지만 ‘고졸’ 중에서도 ‘될 성 부른 떡잎’은 있기 마련이다. 바로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꿈 하나를 향해 고졸이란 사회의 온갖 차별과 장벽을 딛고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기 때문에 이들의 스토리 하나하나는 그 어떤 휴먼드라마보다 진솔하게 다가온다.
우리 시대 고졸 출신이면서도 꿈을 이룬 대표 선수 17인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의 아웃라이어들-학력 파괴로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김영상 지음/북오션)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보다는 그간의 역경을 공개하는 고백서에 가깝다. 특히 고졸 출신이었던 저자(헤럴드경제 산업부 기자)가 직접 이들을 일일이 만나 이야기를 담아내 화자와 청자 사이의 묘한 공감대가 느껴지는 것도 묘미다.
아웃라이어는 한계를 딛고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 자기 영역에서 특출난 성공을 거둔 사람을 뜻한다. 책의 주인공들은 위너(Winner)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가장 높은 장애물인 ‘학력의 벽’을 뛰어넘은 이들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아웃라이어로 손색이 없다.
이 책은 최근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학력 거품 빼기와도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부터 고졸 채용이 사회적으로 큰 트렌드로 자리잡았지만, 여전히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학력은 거부할 수 없는 조건 중 하나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국내 20~30대 남녀 직장인 314명에게 ‘대한민국에서 성공하기 위한 요건’을 물었더니 가장 많이 꼽힌 것(26.1%)이 ‘학벌과 출신 학교’였다. ‘인맥과 대인관계 능력’(24.2%)은 두 번째였다. 통상 인맥에서 학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국내 청춘남녀는 여전히 출세의 지름길을 ‘학력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인맥’에서 찾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학 졸업장은 더이상 출세를 보장하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하고 있다. 높은 취업문에 명문대생들조차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노량진 입시학원에 등록하고, 최근 실시한 서울대 교직원 모집에는 심지어 석박사급들도 대거 몰렸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대졸이 성공의 필수조건으로 여기지만, 실제 대졸자들이 보여주는 행보는 대다수의 인식과 괴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모두가 여전히 학력벽에 갇혀있다 보니 사회적 낭비도 심하다. 대학 간판만을 따기 위해 버려지는 막대한 돈이 대표적이다. 이에 학력의 파괴는 저성장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당위성으로 부상했다. 전 세계적으로 ‘학력 파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한국의 아웃라이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학력은 능력과 아무 상관이 없다” “학력을 쫓지 말고, 꿈을 쫓아라”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현실에 안주해 고졸 속에 녹아 살 것인가와 고졸을 박차고 꿈을 향해 달릴 것인가를 놓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 여기에 더해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르게 할 수 있는지, 항상 차별화를 고심하는 창조적 DNA가 빛을 발휘했다.
한때 고졸사원이었던 저자가 자기계발을 통해 언론사 기자가 돼 ‘한국의 아웃라이어들’을 직접 인터뷰했다는 점에서 책은 많은 공감을 준다. “학력과잉 사회를 깨야 우리가 살며, ‘가방끈’ 길이와 상관없이 실력 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 그런 건강한 사회가 실현돼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공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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