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소액 주주들이 회사의 경영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전자 주주총회 시대’가 본격 개막된다. ‘전자 주총’도입에 떨떠름했던 기업들은 ‘섀도 보팅제’를 폐지하겠다는 정부와 국회의 압박에 서둘러 전자 주총 도입에 나섰다. 계약만 해놓고 전자주총의 실제 도입을 놓고선 주저했던 기업들도 대거 입장을 바꿀 전망이다.

16일 한국예탁결제원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3일 기준 올들어 예탁결제원과 전자주총 계약을 맺은 기업수는 모두 143개사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약을 맺은 기업수가 79개사(누적 기준)였던 것과 비교하면 올들어서만 2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지난 11일까지 113개사였던 것과 비교해도, 이틀동안 30개 회사가 예탁결제원과 추가로 계약을 맺었다. 신한금융지주, GS글로벌, 광주은행, SK증권, NHN엔터테인먼트 등 대기업도 전자주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소액 주주’ 전성시대… 전자 주총 시대 ‘성큼’

본격적인 주총 시즌이 3월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가로 예탁결제원과 전자주총 계약을 맺을 기업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계약 건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예탁결제원과 계약을 맺은 회사 79개사 가운데, 실제로 전자주총을 실시했던 회사는 8곳 밖에 되지 않았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계약을 하고도 전자주총을 실시하지 않은 곳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실제 주총에 전자투표를 도입할 기업들이 90%는 넘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이렇게 앞다퉈 전자주총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덕이 크다. ‘섀도 보팅제’ 폐지를 2017년까지 유예키로 하면서, 대신 전자투표 도입과 전자위임장 도입을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은 ‘섀도 보팅제’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이럴 경우 주총을 열수 없게 되고, 감사 선임 등 회사의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게 되며, 관련법에 따라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우려가 큰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압박과 기업들의 호응으로 ‘전자 주총 시대’가 성큼 다가오게 된 것이다.

‘소액 주주’ 전성시대… 전자 주총 시대 ‘성큼’

그간 기업들은 소액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우려해 전자투표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의결권 대리 행사제도인 ‘섀도 보팅제’를 활용하면 주총 개최에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이 원인이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가 지난해 말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서 ‘섀도 보팅제 원칙 폐지’와 함께 ‘예외 허용’을 제시하자 예외를 인정받기 위한 기업들의 출구 전략이 ‘전자투표 도입’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있다. 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3월의 금요일에 빼곡히 몰려있는 것이다. 주주총회 시각도 대부분 오전 9~10시 사이에 열린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 등에 따르면 주총 일정을 공시한 상장사 236곳 가운데 금요일(3월 13·20·27일)에 주총을 여는 기업은 183개(77.5%)에 이른다.

지난 2013년에는 주총을 개최한 662개사 중 47.3%인 313개사가 3월 22일 금요일에 주총을 열었다. 2014년에는 694개사 중 48.9%인 339개사가 3월 21일 금요일에, 22.33%인 155개사가 3월 28일에 집중됐다.

주총이 특정일에 몰리면서 주주들이 사전에 상정될 안건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시간적으로도 투표권을 정상적으로 행사키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지수 서스틴베스트 전무는 “슈퍼 주총데이에 주주총회가 몰리면 소액주주뿐 아니라 기관투자가 역시 안건에 대해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며 “제도적으로 주주총회 날을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