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김영원, 내달 파도바市 초대전…미켈란젤로 후계자 피노티와 시청광장 등 5곳서 2인전 열어

현대인의 신체적 사유 리얼리즘 조각으로 창조 ‘중력, 무중력’ 시리즈 등 35년 조각여정 한자리에

한국 현대조각계를 리드하는 작가 김영원(66·사진)의 인체조각에 이탈리아가 손짓을 했다.

추상미술과 미니멀리즘의 흐름이 거센 미술계 상황에서도 인체라는 일관된 테마 아래 독창적이면서도 밀도있는 작업을 선보여 온 김영원이 이탈리아 북동부의 파도바 시(市) 초대로 대규모 작품전을 갖는다.

파도바 시는 이탈리아의 정상급 조각가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ㆍ73)와 김영원을 함께 묶어 오는 6월 1일부터 8월 20일까지 80일간 시청광장, 시립미술관, 궁(宮) 등 다섯 곳에서 대규모 조각전을 연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파도시 광장과 궁궐, 시립미술관에 작품을 설치하고 전시를 여는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김영원의 이번 전시는 쾌거로 꼽힌다. 이에 조각계는 K-팝에 이어 K-아트가 유럽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각 메카 伊, 몸에 반했다
조각 메카 伊, 몸에 반했다

▶독특한 인체조각, 조각거장의 마음을 사로잡다=김영원은 인간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바탕으로 인간 내면을 형상화한 인체조각을 선보여왔다. 시류와 아랑곳하지 않고 일관되게 그만의 리얼리즘 조각을 구축해 온 그의 작업에 이탈리아가 러브콜을 보냈다.

김영원에게 손을 내민 이는 세계 최고라는 이탈리아 구상조각의 계보를 잇는 노벨로 피노티(73)다. 피노티는 도나텔로(15세기), 미켈란젤로(15-16세기), 베르니니(17세기), 마리노 마리니(1901-1980)의 후계자로 꼽히는 작가다.

김영원의 전시는 바로 이 조각 거장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피노티는 지난해 5월 이탈리아 서북부의 피에트라산타에서 개최된 ‘2012 한국조각축제’에 출품된 김영원의 작품을 보고, “이렇게 창의적으로 인체를 다루는 조각을 보지 못했다”며 이탈리아에서의 작품전을 제안했다. 이 후 김영원의 도록 등을 접한 파도바 시(市) 미술관계자들이 대규모 전시를 적극적으로 제안함에 따라 한국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축제 형식의 대형 2인전이 열리게 된 것. 이에 두 작가는 파도바 시청광장, 스크로벤니 공원, 에레미타니 시립미술관, 저크만 궁 미술관 등 다섯 곳에서 2인전을 갖는다.

김영원은 “파도바 시는 중세 화가 지오토(Giotto), 조각가 도나텔로의 예술혼을 간직한 유서깊은 도시”라며 “처음 피노티가 전시를 제안했을 때는 작은 개인전으로 출발했는데, 작품집을 본 파도바 시 문화국장이 이례적으로 광장과 시립미술관에서의 2인전을 제안해 일이 커졌다”고 했다. 무엇보다 도심 광장에 김영원의 8m짜리 대형조각이 놓이게돼 대한민국 현대조각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이번 2인전을 통해 ‘인체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점’과 이탈리아와 한국의 차별화된 조형언어가 르네상스의 문화유적지 파도바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교감을 이끌어낼지 기대가 모아진다.

▶60 중반에 새롭게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작가=김영원은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피노티와 나란히 전시를 연다는 것부터 굉장히 영광”이라며 “조각은 회화와 달리 작품의 운반 등이 어려워 해외 전시가 드문 편인데 이번을 기회로 한국 조각을 유럽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김영원은 이번에 8m 크기의 대작을 필두로 5m, 3m, 2.2m 크기의 대작 등 모두 30점을 도시 곳곳에 설치할 예정이다. 1970년대 말~1980년대의 대표적 연작인 ‘중력, 무중력’ 시리즈에서부터 최근작인 ‘그림자의 그림자’시리즈 까지 35년 조각여정을 한자리에서 선보일 참이다.

김영원은 “한국에서는 60 중반이 넘은 나 같은 작가는 뒷방마님 취급하지만, 이탈리아에선 60대야말로 가장 좋은 작품을 뽑아낼 때라고 여기더라. 나 역시 새로운 출발선에 선 청년작가의 심정으로 제2의 도약을 맞고 싶다”고 했다. 이에 김영원은 요즘 이탈리아어를 익히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해 9월부터 올 봄까지 서강대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운 그는 “아침에 배운 단어가 저녁이면 도무지 생각 안 날 정도로 머리가 굳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하려 한다”며 “로마에 작은 집도 구해 아예 이탈리아에 머물며 유럽 조각계를 공략해 볼까 한다”고 밝혔다.

조각 메카 伊, 몸에 반했다
조각 메카 伊, 몸에 반했다

▶재능은 있었으나 법대를 지망한 소년=김영원은 경남 창원 대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가난이 모두의 운명이었던 시절, 그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밭으로 나가 할머니를 도와 김을 매야 했다. 방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밤낮없이 허리 굽혀 일하는 농부의 습성이 그래서 몸에 뱄다. 그러나 중학생 김영원은 ‘이대로 평생 김만 맬 순 없다’는 심정에 할아버지를 설득해 고교에 진학했다. ‘한 학기 등록금만 대주면 그 뒤론 알아서 하겠다’고 떼를 쓴 것.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린 끝에 줄곧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법대가 목표였다. 그런데 고1 때 미술교사였던 도예가 곡우 진종만 선생을 만나며 운명이 바뀌었다.

타고난 미술적 재능을 발굴한 미술교사는 법대를 가겠다는 김영원을 앉혀 놓고 “자네 눈이 보통 매서운 게 아니다. 사람 여럿 잡겠다. 그러니 미술로 진로를 바꾸라”고 충고했다. 이후 그는 각종 콘테스트에 나가 100% 입상했다. 참가하는 대회마다 금메달을 따내 “상 잘 타오는 아이”로 유명했다. 결국은 홍익대 조각과에 입학했고, 대학에서도 각종 공모전을 휩쓸며 승승장구했다.

▶삼성 이병철 회장과의 인연=김영원은 홍익대 대학원생 때 호암 이병철(1910-1987) 삼성 회장의 눈에 들었다. 대학원 실기실 구석에 놓인 그의 ‘기도하는 소녀상’ 사진을 본 이 회장이 “청동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 제작한 적이 있다.

“약 90cm 남짓한 크기의 작품을 시청앞 삼성빌딩 회장실에 설치한 다음, 차를 한 잔 마시게 됐다. 그 자리에서 이 회장이 소녀상을 로비에도 세우고 싶으니 크기를 키워 한 점 더 만들어 달라고 했으나 ‘이 작품은 더 이상 크게 만들면 맛이 살지 않는다’며 고사했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컬렉터이자 기업총수의 제안이니 수용할 만도 한데, 당시 그는 반골 기질이 만만치 않았던 것. 이후로도 이 회장은 김영원의 작품을 특히 좋아해 몇점 더 사들였다. 경기도 용인(현 호암미술관 부지)에 고목나무에 인체조각이 여럿 매달려 있는 실험적인 조각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피가 끓는 때라 참 못 말렸다. 고목나무에 매달아야 할 내 조각을 직원들이 잔디밭에 얌전하게 늘어놓아 화를 벌컥 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렇듯 일찍부터 역량을 보이던 그는 군복무기간 동안 현실과 역사의식에 눈을 떴다. 합리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실주의 조각에 강하게 빨려든 것.

이후 고교 미술교사를 거쳐 모교인 홍익대 교수가 된 그는 ‘중력, 무중력’ 시리즈 등 당시로선 획기적인 작업들을 쏟아냈다. 멀쩡하게 잘 만든 석조 작품을 높은 곳에서 내던져 깨뜨린 뒤, 그 파편들을 붙여 작품화한 1980년대 말 ‘중력, 무중력’ 연작이나 1994년 브라질 상파울로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선 조각’ 시리즈 등은 요즘 다시 봐도 혁신적이다. 그는 상복도 많아 선미술상(1990년), 김세중 조각상(2002), 문신미술상(2008)을 수상했다. 이렇듯 작가로선 남부럽지 않은 이력을 지녔으나 그는 더없이 초탈한 면모다. 철학자같은 선문답도 즐긴다.

김영원의 조각은 뒷모습은 강조돼 있지만 정작 앞모습은 눈도 코도 입도 없는 평면이다. 눈, 코, 입을 배제함으로써 인간의 원초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나약한 현대인들의 자아분열적인 모습과 모든 것이 환영에 불과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조각계에 ‘명상하는 작가’로 알려진 김영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동시에 현대인의 ‘신체적 사유’를 리얼리즘 조각양식으로 창조해냈다. 한 세대의 조각언어가 가질 수 있는 독자성을 지닌 김영원의 조각은 이제 세계를 향해 비상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