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의지 시사·의제 일임 등 파격행보
북한의 16일 북ㆍ미 고위급회담 제안은 ‘레토릭(修辭)’ 차원에서는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한 최고 수준의 대화의지를 보여줬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기존 행태에 비춰볼 때 북한의 ‘말’은 향후 대화국면에서 자신의 몸값을 최대한 올리기 위한 협상전술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일단 헌법상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의 대변인 중대담화 형식을 띰으로써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의지가 담겨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의제에 있어서도 한반도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과 함께 미국의 전 세계적 관심사인 ‘핵 없는 세계 건설’을 제시하며 균형을 맞췄다. 또 남북 당국간 회담 제의 때처럼 회담 시기와 장소는 미국이 편리한 대로 정하라며 양보하는 듯한 모습도 취했다.
특히 지난해 4월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한 데 이어 지난 2월 핵무력·경제발전 병진노선을 천명하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 무효화를 주장했던 것과 달리,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라며 당과 국가, 군민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정책적 과제라고까지 명시한 점이 주목된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가 정책적 과제라고 한 것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처음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라고 밝힌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지난달부터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일본 내각관방참여의 방북 수용,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 그리고 대남 당국간 회담 제의까지 일련의 움직임 뒤 북ㆍ미 회담을 제안했다는 점도 북한의 태도가 바뀐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북한의 북ㆍ미 회담 제의가 근본적인 변화라기보다는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공조체제를 흔들기 위한 전술 차원의 시도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외교 소식통은 17일 “남북 회담 제의가 미·중 정상회담 직전에 나왔듯이 북ㆍ미 회담 제의도 18일 예정된 한·미·일 3국 6자회담 수석대표 대북정책 협의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대북 압박 공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고립을 탈피하고 논점을 흩뜨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북한이 북ㆍ미 대화 의제로 핵 없는 세계 건설을 제안한 것 역시 핵 보유를 전제한 상태에서 미국을 상대로 핵 군축을 놓고 대화하자는 사전 포석이자 몸값 올리기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신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