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예술극장에선 여름레퍼토리로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대표작 ‘보이첵’과 ‘휴먼코메디’가 7월 한달간 공연 중이다. 10년 넘게 꾸준히 관객의 사랑을 받았고,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에서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비극인 ‘보이첵’과 희극인 ‘휴먼코메디’의 색깔은 천지차이다. 명동예술극장에 따르면 두 공연을 모두 예매하는 관객도 꽤 된다. 5분마다 웃기는 ‘휴먼코메디’는 방학철을 맞은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줄 잇는다. 말을 최소화하고 몸의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신체극 ‘보이첵’은 보기에 따라 알쏭 달쏭할 수 있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장인 임도완 연출가로부터 ‘보이첵’의 은유와 상징에 관해 설명을 들어봤다.
독일 극작가 게오르그 뷔히너(1813~1837)의 미완성 유작인 ‘보이첵’은 실제 군인이 애인을 살해한 사건을 극화했는데, 권력과 사회와 개인의 관계, 인간성에 대한 탐구, 인간 존재의 불안함 등을 담고 있어, 현대공연예술의 단골 레퍼토리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에는 거의 매 장면에서 의자가 나온다. 8명의 배우가 각자의 의자를 돌리기도 하고, 쌓아 올리기도 하는 등 의자를 활용해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의자는 육군 소총수 보이첵을 불안하게 들어올리고, 감금시키는 장치로도 쓰인다. 임 연출은 “의자는 권력을 상징한다. 의자는 비어있으면 빈 대로 완전체이고, 누군가 앉으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의자에는 아버지나, 학교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을 수 있고, 극대화시키면 권력이 된다”고 말했다. 이 의자 장면들은 배우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연기자가 기획에 참여해야 무대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연출의 의도다.
어두운 무대에 희고 얇은 빛이 쓰인다. 음악은 아르헨티나 거장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이다. 관객의 눈은 차가운데 귀는 뜨겁다. 언뜻 부조화스러울 것 같지만 묘하게 잘 어울린다. 마지막에 보이첵이 마리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졸라의 음악은 효과를 오히려 극대화한다. 임 연출이 워낙 피아졸라 음악을 좋아해 가져다 썼다. 임 연출은 “해외 초청 공연에선 현지인으로부터 피아졸라가 너희 공연을 위해서 작곡한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배우들은 얼굴에 인디언같은 흰칠의 분장을 하고 나온다. 임 연출은 “장면과 음악이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에, 동양인의 평면적인 얼굴을 그냥 두면 안될 것 같았다. 아그리파 석고상처럼 분장해 입체적이면서 도식적 느낌이 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두 개 이상의 장면이 병치되기도 한다. 오른편에선 중대장이 배를 두들기고, 왼편에선 보이첵이 달랑 의자 두개 위에 몸을 누이고 있는 식이다. 대조 효과다.
임 연출은 “‘보이첵’은 단순 치정극이 아니다. 주변 권력과 세상에 의해 말살되는 개인, 허물어져가는 인간성은 뷔히너가 극작할 당시와 지금의 시대가 다르지 않다”며 원작의 동시대성을 강조했다. 1644-2003.
한지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