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국민대통합 심포지엄’ 들여다보니
배고픔 잊을만한 때 분노 사회로 과거·현재·미래 ‘3불신’ 자리잡아 민·관협력 분쟁해결 시스템 시급
아르헨, 분배갈등 관리 못해 정체 네덜란드는 사회적 합의 성공모델
“한국의 갈등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은 우리가 ‘헝그리(Hungry) 사회’에서 ‘앵그리(Angry) 사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1일 개최한 ‘제2차 국민대통합 심포지엄’의 주제는 ‘갈등’이었다. 산업화의 성공과 외국인이 부러워할 정도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양산하고 국가경제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갈등의 원인 진단과 해소 방안이 주류를 이뤘다.
전경련이 이날 개최한 국민대통합 심포지엄은 두 번째다. 첫 번째 주제는 ‘일자리 창출과 동반성장’이었다. 통합의 화두 속에 두 번째로 ‘갈등’을 담은 것은 갈등 해소 없이는 경제 살리기는커녕 선진국 진입이 요원하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다. 이날 전문가들 역시 분쟁해결 시스템의 사회를 만들지 않고서는 경제 살리기는 물론 시대 화두인 창조경제의 길은 멀다는 인식을 보였다.
▶국가경제 위협하는 갈등 왜?=이 교수의 진단은 명쾌하다. 우리 사회가 배고픔을 잊을 만할 때쯤 분노의 사회가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 경험에 근거한 불신, 현재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 등 ‘3불(不) 시대’에 자리 잡고 있는 분노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 갈등의 한 원인을 ‘역설’로도 설명한다. 이 교수는 “갈등 구조가 뿌리뽑히지 않는 것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은 떨어지는 ‘풍요의 역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냉소가 증대되고 투표율은 떨어지는 ‘민주화의 역설’과 같은 ‘역설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갈등 증가의 요인으로는 공식적 정치 참여의 감소와 신뢰 하락이 거론됐다. 김재열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며 “행정에 대한 신뢰지수가 8.0으로, 정당(2.9)에 이어 사회 내 주요 제도적 행위자 중 두 번째로 낮았으며, 이러한 것들이 갈등의 장기화 현상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갈등 사회 비용 점점 심각=갈등 완화는 비용 부담 해소와 궁극적인 성장잠재력 확충의 길이라는 게 이날 심포지엄의 결론이었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사회갈등 비용을 절감해 국력낭비를 최소화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했다.
갈등의 관리가 중요한 것은 심각해지는 갈등은 국가 쇠망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세계 5대 경제대국이었다가 분배갈등 관리 실패로 발전이 정체된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는 평가다.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갈등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지만, 우리는 역기능에 치중해 있다는 게 문제”라며 “갈등지수를 10% 끌어내리면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5.4% 증가한다는 통계는 시사점이 크다”고 했다.
갈등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공감대 형성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를 통해 효과적인 갈등관리로 저성장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킨게임을 윈윈게임으로 전환시키고, 사회갈등 해소를 저성장 극복의 모멘텀으로 활용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90년대 일으켰던 ‘네덜란드 기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80년대 초 네덜란드는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등 어려움에 봉착했지만, 노사가 임금인상 억제와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하고 사회적으로도 정부의 구조개혁에 협력함으로써 인플레이션과 임금인상의 악순환을 끊은 ‘네덜란드식 소통’을 이제라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심포지엄 개회사에서 “사회적 갈등 관리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 짓는 중요한 과제인 만큼, 민ㆍ관이 협력해 사회 갈등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영상 기자/